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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저희가 새면되요 (03.10.2019)

목사에게 있어서 토요일은 결코 즐거운 날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목사들이 토요일에 밤을 새웠다고 하면 설교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 여겼는데, 설교 준비와 상관없이 영적으로 주는 부담감이 상당하여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습니다.

지난 주에 있었던 일입니다. 토요일 저녁 시간이 되어 설교를 다듬어 가던 중 ‘설교 후 찬양’이 설교와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설교 내용’에 관한 것이라면 바꿔서 내일 사용하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설교 후 찬양’이라 이미 찬양팀은 연습이 끝난 상태일 것이기에 바꾸는 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카톡에 찬양팀 방을 만들어 미안한 마음을 담아 문자를 보냈습니다. 부득불 찬양을 바꿔야겠으니 양해해 달라고.

다음날이 되어 3번의 주일 예배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한 주의 가장 홀가분한 시간이 되어 교회를 나서는데 찬양팀의 한 자매가 저를 조용히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목사님, 찬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꾸세요. 밤은 저희가 새면되요.”

작은 소리였습니다. 주위에 누가 있었어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천둥 번개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가벼이 “땡큐” 그리고 집에 돌아 왔는데 그 마음의 울림은 한 주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제게 남아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목사 한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사실, 한몸교회에 부임하여 무수한 밤을 새우며 기도할 때에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을 가진 날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작은 일을 통하여 알게 하셨습니다. 저와 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이가 우리 가운데 많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을 담아 교우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합니다. 왠지 이 밤에는 교우들이 모두 다 전우 같은 생각이 듭니다. 천상을 향해 함성을 외치며 흙먼지 뒤집어쓰고 함께 웃는 전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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