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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2023. 요한복음 강해(8): 상식을 깨부수다. 요3:1~16절

본문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살짝 불편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당연한 상식을 예수님이 지속적으로 비틀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이 그러한가.

●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

이 에피소드는 2장 23절부터 이어지는 유월절에 있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때에 예루살렘에서 많은 표적(sign)을 행하셨다. 표적의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2.:23) 그런데 뜻밖에 예수님이 이들의 믿음을 보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2:24) 그 이유를 요한은 예수님은 친히 모든 사람을 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2:24)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은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을 구분하신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본질을 아시는 주님은 표적으로 인하여 믿게 된 믿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다는 뜻도 있다. 이는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말이다. 우리는 ‘큰 기적은 큰 믿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기적을 추구하는 신앙은 예수님이 참되다고 하는 신앙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마약과 같다. 계속해서 큰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 또한 기적을 좇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그 기적의 중심에 ‘내’가 있다. 삶의 주인이 내가되고,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종의 위치로 인식하게 된다. 호칭만 ‘주님’이니,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것을 채우는 역할을 해 주기를 요구하는 신앙으로 변질된다.

기적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증명되는 일에 쓰임을 받을 때에 바른 표적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표적을 보고 자신을 좇는 사람을 예수님은 그렇게 인정하지 않으신 것이다. 이 표적에 대한 언급 후에 3장에 ‘니고데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를 그다지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니고데모가 찾아 온 이유가 표적을 보고 찾아왔기 때문이다.(3:2)

예수님은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상식을 뒤집는 말을 한다. 그것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니고데모는 혼란에 빠졌다.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물었다. 이에 예수님이 두 가지로 대답하셨다.

● 거듭남의 방법

1) 물과 성령

물은 ‘심판’ 곧 ‘죽음’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죄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인정되지 않으면 아직도 구원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이다. 물은 ‘성령’과 함께 묶여 있으면 또 다른 의미가 생긴다. 그것은 ‘죄 씻음’이다.(e.g. 침례) 성경은 맑은 물이 정결케하고, 새 영(성령)이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해 준다고 말한다.(겔36:25,26)

2) 놋뱀

예수님은 거듭남의 또 다른 방법으로 놋뱀의 예를 드셨다. 그것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자신도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14,15절) 무슨 말인가. 이 이야기는 출애굽 시대에 있었던 일을 말함이다.(민21장) 출애굽한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을 하자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어 물려 죽게 한 일이 있었다. 이 때 모세가 장대에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았다. 그리고 이 뱀을 보는 자는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 말을 믿고 놋뱀을 본자는 살았었다.

놋뱀이 장대 위에 달린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게 되는 것을 보여 주는 모형이다. 그런데 여기서 약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장대에 매달린 것이 놋뱀이라는 부분이다. 만일 이것이 십자가 사건을 상징한다면, 뱀은 곧 예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성경의 뱀은 주로 악한 이미지이다. 거의 대부분 마귀, 사탄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놋뱀, 즉 사탄이라는 뜻이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것은 이런 뜻이다. 성경에 의하면, 나무에 사람을 매다는 것은 가장 큰 저주를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신21:23) 뱀은 죄의 원흉, 근본이고, 놋은 심판을 상징한다.(신28:22,23) 그러니까 놋뱀을 들어 올렸다는 것은 심판 받은 뱀, 저주 받은 뱀을 들어 올린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놋뱀처럼 죽었다는 것은, 우리가 받을 그 온갖 악한 재앙들을 한 몸에 뒤집어쓰고 저주 받은 모습으로 죽게 됨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십자가를 볼 때에 우리를 구원하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 이전에, 내가 받을 그 고통과 멸시와 무서운 저주가 그곳에 달려 있음을 봐야 한다. 만일 이것을 보지 못하면 내가 얻은 진정한 구원이 뭔지 잘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치가 뭔지 모르는 아주 얕은 신앙인으로 살게 될 것이다.

이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콕 찝어 지목하며 ‘네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삶을 살아야 거듭나게 된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은 바람의 예를 드시며 ‘너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것을 예수님이 해결하시겠다는 뜻이다. 자신이 친히 나무에 달려 저주 받아 죽는 것, 그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처럼 내가 너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는 방법 외에는 너희가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은 없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녹여 쓴 것이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남’의 헬라어는 ‘아노덴’이다. 이 말의 제 일의 뜻은 ‘위로부터’이다. 그러니까 이건 시간적 의미가 아니다. 장소적 의미이다. 거듭남을 하늘로부터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늘로부터 해야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직접 나서신 것이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직접 우리의 죄를 해결하신 사건이. 그것이 ‘십자가’이고, 우리가 얻은 구원이다.

이 모든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땅의 일을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을 믿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구원은 하늘의 방법이고, 하늘의 언어이다. 우리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우리의 노력으로 불가능한 구원이 대속의 십자가를 통한 그 믿음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표적을 추구하는 신앙의 문제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3.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 있는가. 언제 주로 그러한가?

4. 내가 니고데모의 입장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은가.

5.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다른 이에게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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