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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023. 요한복음 강해(3): 그의 영광을 보는 자. 요1:14~18절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14절)는 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언어와 이성을 다 동원해도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내용이다. ‘말씀’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말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육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육신의 의미

이 말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단순한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헬라어의 육신의 의미가 한국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몸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소마’이고 다른 하나는 ‘사륵스’이다.

‘소마’는 상당히 밝고 긍정적인 느낌이다. 인간의 지,정,의를 표현하는 인격의 의미를 담은 정중한 표현이다.(e.g:고전6:20) 반면 ‘사륵스’는 그렇지 않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육체적 연약함, 영과 대립하는 반대 개념, 인간의 죄성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e.g:롬8:6) 이 두 단어는 신약에서 혼용되어 사용하기에 혼동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마는 긍정적, 사륵스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왔다’고 할 때 쓰인 육신이 바로 ‘사륵스’이다. 악하고 부정적인 단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히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뜻 보다 훨씬 더 강력한 뜻이다. 하늘 보좌에 계신 분이, 결코 죄와 함께 거할 수 없는 분이신 그 하나님께서, 죄악의 상징, 죄성이 가득한 ‘사륵스’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말에 담겨진 신학적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신령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더럽고 추한 육신에 오셨다는 것은 인간의 더러운 죄성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케 됨을 의미한다. 또한 그가 죄악된 육체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죽는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 담겨져 있는 말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육신(사륵스)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럼, 육신이 되신 후에 무엇을 하셨는가. 그가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한다. ● 거하심의 의미

‘거하심’은 헬라어로 ‘스케노오’다. 본 뜻은 ‘장막을 치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 놓은 그 성막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성전 삼아 내 안에 거하여 나와 함께 영원히 같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가. 왜냐하면 우리는 틈만 나면 하나님을 벗어나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기회가 생기면 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당신과 함께 꽁꽁 묶어둔다는 것이다. 우리를 동여매어서 하나님 나라에 강제적으로 끌고 가시는 그 분의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이유이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목 박혔다’고 말했다.(갈2:20) 그러므로 이제 죄의 유혹이 찾아 올 때에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이제 내가 저지르는 모든 죄악은 이제 더 이상 하 혼자 짓는 죄가 아니다. 내 안에 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가 나를 묶어 두고 있듯이 나도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 어떤 유혹이 찾아 올지라도 절대로 그 십자가에 박힌 못을 뜯어내려 하지 말아야 한다. 유혹에서 눈과 귀를 막아서 그것에서 벗어나기에 힘을 쓸 때만이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는 삶을 살 수가 있다.

● 보다의 의미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본다’는 말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말이다. 성경에 분명히 예수를 믿는 자는 그에게 붙잡힌바 되고 그가 내 안에 거하는 것을 본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전혀 본적도 없고, 느낀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된다.

왜 나는 보지 못하는가. 헬라어에는 ‘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5개 정도 된다. 그 중에 14절의 ‘영광을 보다’에 쓰인 단어는 ‘데아오마이’이다. 이 단어의 뜻은 어떤 대상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침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침례를 줄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을 ‘보았다’고 할 때에 쓰였다.(32절) 그러니까 이 때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집중해서 의미를 담아 봤다는 것이다.

왜 그가 그렇게 했는가. 그것은 이 일이 있기 전에, 성령님이 요한에게 한 가지를 알려줬다. 그것은 성령이 한 사람 위에 머무는 것을 보면(!), 그가 곧 그리스도라는 지침이었다.(33절) 여기서 ‘보다’는 ‘에이도’이다. 이것은 ‘발견하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어느 날 하나님이 침례 요한에게 ‘누군가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네가 발견하면(헬.에이도), 그가 곧 그리스도이다.’라고 알려주셨다. 그 후로 그는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모든 사람을 단순하게 보지 않았다. 의미를 담아서 집중적으로 본 것이다.(헬.데아오마이) 이 주목하고 의미를 담아서 봤더니 결국에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내 주변에 항상 벌어지고 스쳐 지나가던 모든 것들, 당연하게 여겼던 그 모든 평범한 것들을 이제 ‘데아오마이’해야 한다. 주목하고, 응시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가 하는 깊은 고민과 묵상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행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

성경에 보면 물리적인 시각으로 주를 보려고 하는 자는 모두 실패했다. 대표적으로는 예수님의 형제들, 그의 친척들은 예수님의 살아생전에 그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미쳤다고 했다.(요7:5,막3:21) 예수님과 3년을 함께 했던 빌립도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요14:8)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옆에 두고도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일반적인 눈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럼, 언제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마치 침례 요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그것을 ‘데아오마이’ 할 때에, 주목하여 의미를 담아 응시할 때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죄의 유혹이 올 때에 내가 이기는 개인적인 방법이 있다면 나누어 보라

3. 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심을 느껴 본 때가 있었는가.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4. 내 삶 속에서 내가 묶여 있는 것은 무엇인가. 왜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5.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일이 있는가. 어떤 경우였으며 그것이 왜 하나님이라 생각됐는가.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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