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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2023. 요한복음 강해(4): 침례 요한의 증언. 요1:19~34절

Updated: Apr 18, 2023

침례 요한을 떠올리면 애잔하다. 아마도 그의 위대한 사역과 비례하여 그의 죽음이 너무 허무하기 때문이다. 술 취한 헤롯 왕의 실언으로 갖게 된 그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고 아프다. 사실 비단 침례 요한 뿐만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 역시 마지막 모습은 그들의 삶이 보상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이 있다. 그들 모두는 자신의 마지막이 어떠할 것인지 분명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기꺼이 그 길을 기쁨으로 걸어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두 가지에 있어서 분명하다. 하나는,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자신에게 있지 않았다. 그리스도에게 있었다.

그렇다. 우리 신자 모두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부름을 받았다. 그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본문의 요한과 유대인의 대화 속에서 찾아본다.

● 요한과 유대인의 대화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쳤다. 이 외침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그에게 나와 죄를 자복하고 그에게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로 당황한 유대인들이(아마도 산헤드린 공의회원들) 사람을 보내어 침례 요한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그 질문들은 요한이 그리스도인가, 엘리야인가, 선지자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요한은 이에 대하여 명쾌하게 답을 하지 않고 단답형 그리고 추상적인 답변을 한다. 결국 화가난 유대인은 그에게 무슨 자격으로 백성들에게 침례를 주느냐고 묻는다.(25절) 그 때 그는 ‘나는 물로 침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그이는 훨씬 더 큰 능력이 가진 자’라는 역시 잘 알 수 없는 답변을 하였다.

심지어 그의 대답 중에 사실이 아닌 것도 있다. 그는 주의 길을 먼저 예비하러 온 엘리야임에도 불구하고 ‘아니’라고 한 것이다. (말4:5,6.사40:3) 사실 이 대답이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그의 사역을 이어 받아 온 것이지(눅1:17) 이전에 승천했던 바로 그 엘리야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이 생긴다. 만일 그렇다면 유대인들에게 자세히 설명을 하지 왜 그리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 듣기 때문이다. 원래 그렇다. 하나님 나라는 주의 선택된 백성들이 아니면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다.

예수님도 ‘이들이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예로 들며 말씀하신 일도 있었다.(마13:14) 또한 총독 빌라도와 헤롯 왕 앞에서도 이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마27:14,눅23:9) 왜냐하면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눅22:67)

이것이 복음의 신비이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명쾌한 답을 줘도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에 이단들을 보라.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고 황당해도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생긴다. 무엇을 말하는가. 믿음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과 열정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렇다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자리에서 대강 대강 하거나, 내 생각에 전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는 곳에는 안 전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기회가 있으면 전해야 한다. 하지만 복음을 전할 때에 아무리 전해도 믿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본인의 사명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그저 씨를 뿌릴 뿐이다. 그 뿌린 씨의 밭을 일구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면 신자의 사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침례 요한과 예수님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둘 다 기적으로 태어났고, 사역 전에 광야에 있었으며, 회개를 촉구하는 것도 같고, 의를 전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의 차이가 있다. 어떤 점이 다른가. 침례의 차이로 비교해 본다.

● 침례: 침례 요한 vs. 예수님

1) 침례 요한의 침례: 요한은 물로 침례를 줬다.(26절) 물은 ‘심판’을 상징하고, 침례는 ‘연합’을 의미한다.(롬6:4) 그러므로 요한의 물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내가 심판과 연합하여 나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 침례는 단지 하나의 요식 행위이지 실제로 구원과는 상관없다.(벧전3:21)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했다고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그것은 예수님의 침례이다.

2) 예수님의 침례: 요한은 예수님은 성령의 침례를 베푼다고 했다.(33절) 즉, 이는 우리가 성령과 연합이 됨을 의미한다. 이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 침례를 통하여 성령이 내 안에 들어와서 성령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요, 주인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고전12:3) 이 고백이 있는 자는 성령의 내주를 통하여 우리의 온전한 구원이 이르는 날까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신다.(엡1:13,14)

정리를 하면, 우리 중에 물로 침례를 받은 자가 있다. 그런데 그것 자체로는 구원이 없다. 왜냐하면 물 침례는 단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백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법정에서 죄인임을 인정한 것과 같다. 그 자체로 구원이 없다. 여기서 하나 더 가야 한다. 그것은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가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유일한 분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 침례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단지 요한의 침례에만 머무르고 있다. 교회를 다녀서 마음의 평강이 있고, 나는 평소에 예수를 많이 말한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오늘 당장 내가 죽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이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의지한다는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요한이 전하는 회개의 선포에 그가 그리스도인줄 알았다. 이 일은 요즘도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다. 내가 좋은 설교를 많이 듣는 것으로 구원 받지 않는다. 이제 요한의 요단강에서 나와야 한다.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가야 한다. 그만이 나의 구주요 구원자라는 고백을 해야 한다. 그 때 나의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지고 내가 살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오늘날 침례 요한과 예수님을 만났다면 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은가.

3.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해도 안되었거나, 반대로 단지 몇 마디했는데 예수를 믿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4. 요한은 왜 엘리야가 아니라고 했을 것 같은가.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 보고 나누어 보라.

5. 나는 요한의 침례에 머물고 있는가 아니면 성령 침례를 받은 자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6. 내가 보는 현대의 크리스찬의 모습은 어떠한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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