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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2021. 아브라함의 이야기(7) 이스마엘의 탄생. 창16장 1~11절

한국 사람들은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원어를 보면 ‘아내’이다. 히브리어 ‘잇샤’로써 사라를 지칭하는 단어와 같다.(3절) 즉, 합법적 아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지속적으로 하갈을 ‘사래의 종’ 혹은 ‘아브라함의 종’이라 칭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법과는 다른 하나님의 법의 기준으로 봤을 때에는 하나님이 말한 그 ‘언약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땅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 놓여 있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과 방법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침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씀을 통해서 살펴본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브라함 부부의 절대적인 갈망을 보고 있다. 그것은 자녀를 갖기 원하는 간절함이다. 하나님은 이들 부부에게 계속적으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 같이 많게 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듣는 아브라함의 입장은 다르다. 그렇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단 한명만이라도 달라는 것이다.

앞서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전쟁을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타나나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줄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 ‘왜 내게 씨를 주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하나님이 자녀를 주셔야 그들이 커서 내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니 방패가 되어준다는 공수표를 남발하지 말고 먼저 말한 약속부터 지켜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원망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시청각을 동원해서 약속하셨다. 하늘의 별을 보여 주고, 갈라진 짐승을 홀로 지나가시며 본인의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16장이 어떻게 시작하는가.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출산하지 못했다’고 한다.(1절)

이 정도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해도 해도 너무하신 거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아이러니다. 내 신앙이 좋아지고 믿음이 좋아지는데 그것과 현실이 비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처한 환경이 도무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의 상황은 믿음이 좋을 때와 없을 때에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런 상황 속에 놓인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기다림

한 사람이 이전에 비하여 신앙이 성숙했음을 알 수 있는 척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다림’이다. 신앙은 항상 기다림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우리가 생각하는 적당선의 인내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인내는 차원이 다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10년을 기다렸다. 기다리다 지친 아브라함은 기어코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녀는 하갈의 자녀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에게서 태어날 이삭이기 때문이다.

사실 10년을 인내하며 기다린 것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결코 가볍게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여히 여겨서 바로 사라가 임신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자비하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약속의 자녀 이삭이 태어난 것은 이로부터 15년 후다.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자그마치 14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무슨 얘기인가. 하나님이 기대하는 인내의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우리에게 훨씬 더 큰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 겪어야 할 큰 고통은 기다림을 배우는 것이었다. 신앙의 성숙에는 지름길은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훈련 방법이다.

2. 하나님이 방법을 고수

아브라함이 자녀를 기다리다 지칠 즈음에 사라로부터 아주 달콤한 제안이 하나 들어온다. 그것은 여종 하갈을 통하여 자녀를 얻자는 것이다. 이 방법은 당시 고대 근동 문화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부다처제인 당시에는 첫 번째 부인에게서 자녀가 없으면 두 번째 부인을 두어 자녀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으로서는 문제가 아닌데 하나님은 문제라 하신다. 우리는 저마다의 소원이 있다. 그런데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방법이 명백히 아니라면 우리는 과감히 그것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세상의 모든 기준으로는 문제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길이면 행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하와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가져다가 권했다. 그것은 보암직했기 때문이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하갈을 권했다. 이 역시 아브라함의 삶의 기준이 눈에 좋은 것이었기 때문이다.(3절) 그러나 믿음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끝, 그의 가리킴을 보는 것이다.

3. 하갈을 취한 대가

아브라함은 세상의 방법으로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풀이를 했다. 여종에게 낳은 육체의 자녀(이스마엘)가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낳은 약속의 자녀(이삭)을 박해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갈4:22~29)

이 일은 실제적으로는 오늘날 이스마엘의 자손인 아랍인들과 팔레스틴에서의 충돌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적인 의미가 있다. 그것은 요즘도 변함없이 이 율법주의 사고가, 은혜를 사는 우리를 묶어 놓고 짐이 되어 지속적으로 신자들을 누르고 있는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삭의 후손인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인이라는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율법의 행위로 끊임없이 은혜를 사려고 한다.

세상의 원리와 방법으로 낳은 이스마엘의 후손은 여전히 율법 안에 갇힌 자들이다. 반면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은 몸과 같은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난 이삭의 후손들은 내 노력, 내 실력,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율법과 은혜의 대조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조급함이 없으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 증거로 보여주신 것이 십자가이다. 죄를 지은 우리는 대안이 없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대속케 하셔서 우리를 은혜로 감싸 안으셨다.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임한 은혜이고, 그를 통하여 우리가 처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인 것이다. 이 땅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인내로 기다리면, 자녀들 결코 외면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가장 오래 기다린 기도의 응답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것을 인내할 수 있었는가.

3. 나는 어떤 유혹에 가장 약한가.(e.g:물질, 이성, 명예, 권력...) 나는 이 유혹을 어떻게 이기는가.

4.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가 없는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옳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나의 기준은 무엇인가

5.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혹은 여전히 누르고 있는 율법적인 부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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