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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2022. 호세아서 강해(1): 회복의 은혜. 호1:1~11절

Updated: Nov 11, 2022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낸 선지서다. 또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이 아주 잘 나타나있다. 호세아는 북왕국 여로보암 2세 때에 활약을 한 선지자로 당시는 다윗, 솔로몬 이후로 정치, 경제적으로 상당한 번영을 누릴 때이다. 반면에 영적으로는 아주 타락했다. 백성들은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했고, 종교 지도자의 타락으로 백성들 사이에는 우상 숭배가 만연했다.

이들이 영적으로 타락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은 광야의 신이다. 그가 주는 축복은 고작 의복이 상하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는 것 그리고 양식으로는 만나와 메추라기였다. 하지만 가나안 땅의 신은 농경의 신이다.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햇빛과 비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태양을 주관하고, 폭풍과 비를 몰고 오는 풍요의 신이 필요했다. 그 가나안 땅의 신이 바로 바알신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현재 누리는 모든 물질의 축복이 바알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것이다. 이런 영적인 타락이 극에 달했을 때에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자를 택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말이 아닌 행동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지를 전하라 하셨다. 그 행동은 호세아가 음란한 여자, 고멜을 아내로 얻는 것이다.

음란한 여자가 무엇을 뜻하는가. 실제 창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율법에 창녀와의 결혼을 금지했기에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창녀와 결혼하라고 했을리는 없다.(레21:14) 그럼, 음란한 여자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 말은 말 그대로 영적, 육적으로 ‘음란과 음행’을 일삼는 여자이다.

당시의 배경으로 보면 더욱 그것이 확실하다. 성경은 우상숭배를 영적인 간음이라 하였다. 또한 육적으로는 바알 신을 섬기는 제사가 실제로 상당히 성적으로 문란하다. 이런 문란함이 자연스럽다 보니까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나중에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나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성에 대한 관념이 자유분방한 음란한 여자였다.

왜 하나님은 선지자인 호세아에게 그런 여자와 결혼하라고 했는가. 우리는 호세아를 통하여 아내의 배신과 외도에도 끝없이 아내를 포기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그의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 우리 역시 고멜과 같이 음행하고 타락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유익이 있다면, 언제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세상으로 돌아갈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끝까지 우리를 찾아와 우리를 회복시킨다.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회복의 은혜를 주시는가.

● 언약의 회복

호세아는 고멜을 통해 세 자녀를 낳는다. 이 세 자녀의 이름을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다. 첫째는 이스르엘,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이다. 둘째는 로루하마, ‘긍휼이 여김을 받지 못한다’이다. 셋째는 로암미, ‘너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이전에 모세와 맺었던 그 언약,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레26:12)라는 언약을 파기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어마 어마한 선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오랜 세월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언약을 파기하신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주 절망적인 선언이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이 선언을 하신 후에 바로 축복의 메시지를 하신다. 그것은 이들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게 하시겠다는 것이다.(10절) 왜 앞의 말과 뜻을 바꾸셨는가. 사실 하나님의 이 언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시로부터 1,300년 전 사람인 아브라함에게 했던 언약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을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하셨다.(창22:17)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그 언약을 파기하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바로 마음을 돌이키셨는가.

이것이 바로 이방신과 하나님과의 차이다. 이방신은 진노하면 그 신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하여 그 신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그렇기에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는 마음의 표현을 반어법으로 하신 것이다. 그것이 진노가 섞인 심판이다. 하지만, 그것은 본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마음은 회복케 하시겠다는 사랑이다.

그런데 그 회복의 장소가 어디인가. 그들이 실패한 바로 그 장소에서의 회복을 약속하신다.(10절)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한 장소로 벗어나거나 도망가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내가 아파하는 그 자리에서 회복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와 실패가 묻어있는 갈보리 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회복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 연합의 회복

하나님께서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겠다고 하셨다.(11절) 이 우두머리(지도자)는 누구를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남과 북 왕국이 하나로 연합하듯이 모든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 아래 하나로 연합하는 날이 반드시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가. 그것은 ‘이스르엘’을 통해서이다.(11절) 이스르엘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심으신다’는 긍정의 뜻이다. 이 11절의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심으신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의 평원이다. 이곳의 서부 지역에 ‘므깃도’가 있다. 므깃도가 어디인가. 그곳은 요한계시록 16장에 나오는 ‘아마겟돈’이다.

이 아마겟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 때에 모든 악한 군대를 전멸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할 곳이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이 하나로 연합될 것을 말씀하기 위하여 이스르엘이 등장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를 십자가로 묶어 하나로 연합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현재 우리의 처지가 어려운가.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케 하시고 주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할 것이다. 이 회복의 은혜가 결코 우리를 포기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흐르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나는 물질의 복과 영적인 복이 있다면 어느 복을 택하겠는가. 솔직한 마음을 나누어 보라

3. 이방신은 이생의 물질의 복을 주고 하나님은 사후의 천국을 약속하신다. 뭐가 더 좋은가. 왜 그런가.

4. 내가 음란하다고 느끼는 적은 언제인가. 그러한 음란함을 이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5. 내가 실패한 자리에서 회복한 경험이 있는가.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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