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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2023. 요한복음 강해(27):표적7.나사로를 살리심. 요11:1~16절

요한복음에 등장한 모든 표적들은 단 하나의 사건을 가리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원이다. 그 중에 이 일곱 번째 표적인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가장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다.

● 사건의 개요

신약 성경에는 두 개의 베다니가 있다. 침례 요한이 침례를 주던 요단 강 저편 베다니와 예루살렘 근처의 유대 땅 베다니다. 유대 땅 베다니에는 예수님이 가장 사랑했던 가족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이 있었다. 요단강 베다니에 계시던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음을 들었다.

이 얘기를 들은 예수님은 독특한 행동 하나를 하신다. 그것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바로 이동하지 않으신 것이다. 이틀을 더 그곳에 머무셨다. 그 후 그는 요단강 저편 베다니에서 유대 땅 베다니로 이동해 가셨다. 그리고 이미 부패가 시작된 나사로를 살리셨다.

이 나사로의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이 사건은 이미 구약에 그림자로 예견된 일이었다. 예수님이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요단강을 건너서 유대로 가는 모습은 정확히 구약의 여호수아가 한 일과 동일하다. 여호수아는 긴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 첫 성 여리고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절대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다.

여호수아는 예수님의 모형이다. 이 여리고 함락 사건은 지금 예수님이 12제자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인간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사망 권세를 깨부수는 것과 동일한 그림이다. 특별히 이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갔는가.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강에 들어가자 요단강물이 끊겨서 마른 땅이 된다. 그 후에 그 말라버린 요단강을 백성들이 건넜다.

이 일은 모세가 홍해 바다를 가르고 말라버린 바다 위를 백성들이 건넌 것과 아주 흡사하다.(수4:23) 모세는 이집트를 탈출할 때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장자의 죽음을 면했다. 어린 양의 대속의 죽음이 이스라엘 백성을 살린 것이다.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유월절이다.

요한은 지금 이 나사로의 이야기가 바로 그 얘기임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사로를 살리신 후에 바로 유월절이 이어짐을 보여 준다.(55절) 여호수아도 요단강을 건너간 후에 바로 유월절을 지켰다.(수5:10) 무슨 말인가. 이 세 사건이 모두 같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요한은 이 유월절의 이야기를 나사로의 죽음과 대입하여 죄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우리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살아나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마지막 표적, 싸인으로 보여주고, 이제 12장부터는 실제 그 모델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고, 그곳에 달려 죽는 것으로 이 싸인이 실제로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특별히 이 모든 이야기에서 강조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기적이 모두 3일째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도 요단에 거한지 3일째 날에 행했다.(수3:2) 예수님도 요단 베다니에서 이틀을 더 유하시고 3일째에 그곳을 가셨다. 그 3일째에 죽은 지 오래된 나사로를 살려낸다.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완전한 죽음을 당하셨다. 그리고 3일째에 부활하셨다.(눅9:22)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도 이틀을 더 유하셨던 것이다.

●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

이 가족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의 사역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구세주요 주님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었다.(27절) 그것은 그들의 진심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들의 삶에 위가가 닥치니 어떻게 반응하는가. 주님이 빨리 오셨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망의 발언을 예수님에게 한다.(21,32절)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을 믿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그것을 믿는다고 대답했다.(25,27절) 그런데 대답은 그렇게 해놓고, 나사로가 들어있는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니 죽은 지 오래되어 냄새난다고 옮기기를 거부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의 신앙의 고백은 진짜였다. 그러나 그 고백이 내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기본과 본질은 ‘생명’이다. 그런데, 많은 사역을 함께 하면서도 그 사역의 기초가 참된 믿음에 기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내가 예수를 믿고, 그 믿음으로 얻기를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마도 대다수의 신자들이 평안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 평안을 무엇을 통하여 얻기를 원하는가. 만약에 그것이 무병장수와 물질적 풍요를 통해서 평안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아주 가난한 신앙이다. 신자는 그러한 세상의 것으로 평안을 얻지 않는다.

신자와 불신자의 삶을 비교해 보라. 신자들이 훨씬 더 삶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나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와 격돌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큰 특권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상당한 고통을 동반한다. 신자는 신앙의 방향을 진리와 생명과 영원을 준비하는 것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나의 욕심과 욕망에 붙들려 있다면 내 신앙과 현실의 괴리에 크게 낙담하게 될 것이다.

‘신앙이 좋은 사람은 기적을 동반한다’는 명제는 사실이 아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세상의 것이 나를 만족시키지 못함을 깨닫는 쪽으로 인도받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모든 것은 찰나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누릴 수 있는 복은 순간이 아니다. 영원이다. 하나님의 평안은 찰나인 세상 것으로 누리지 않는다. 우리의 평안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확인된다. 우리의 이 짧은 생애뿐만 아니라, 영원의 시간까지 우리를 붙들고 계시고, 인생을 간섭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변함없이 일하고 계시는 것을 아는 것으로 우리에게 평안은 주어진다.


그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라. 그것이 우리의 삶에 기적이 도입되는 이유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스스로 내가 가진 믿음과 내 행동이 모순이라고 느낀 적이 있는가. 언제, 무슨일이었나

3. 좋은 신앙은 세상의 것에 동요되지 않는 평안을 가지는 것이다. 내 신앙은 어떠한가

4. 하나님이 내 삶에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으면 내가 어떻게 달라질 것 같은가.

5.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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