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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2023. 요한복음 강해(26):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요10:22~29절

요한복음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구조를 구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먼저 ‘표적’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1장부터 12장까지를 ‘표적의 책’이라고 하고, 13장부터 21장까지를 ‘영광의 책’이라고 한다.

‘인간의 죄성’으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1장에서 10장까지를 1부로 구분하여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며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고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11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의 2부는 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가 실제로 죽는 과정을 보여 주며 그 십자가는 예수님이 스스로 택하여 실행한 사건임을 말한다.

그렇기에 1부의 시작을 보면 침례 요한이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선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1:29) 그리고 1부의 끝 10장 마지막에 와서 예수님이 요한이 처음으로 침례를 베풀던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침례 요한이 전한 예수님의 내용은 모두 참이었다. 진짜였다는 것으로 결론짓는다.(10:41)

이 마지막 부분의 내용을 보면 앞으로 이렇게 전개될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가 점점 많아지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서 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더라는 것으로 결론이 날 듯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가신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고, 이를 설득하기 위하여 오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갖는 오해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하고 그들의 논리를 만족시켜 주면 그들이 예수를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잘 소개하여 그들로 구원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논리로도, 개인의 노력으로도 안 된다. 예수를 믿게 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전도 프로그램을 보라. 이 프로그램들이 탁월하게 일을 한다면 아마도 모든 교회가 이를 도입할 것이고 전 지역이 복음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유행을 타듯이 일어났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것은 불신자가 신자가 되는 것은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만일 이러한 프로그램으로 모든 사람을 설득하여 신자가 되게 할 수 있다면 굳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필요가 없다. 인간의 노력과 방법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목적으로 온 것을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이 요한복음이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이요, 부름이요, 그분의 의지이다. 이것을 믿을 때에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 진다. 왜냐하면 구원이 내 선택과 내 결정이라고 믿는 분들은 자신이 흔들리면 하나님도 흔들린다. 내가 연약해지면 하나님도 나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이 지배한다.

오늘날 교회가 힘을 잃는 이유는 기독교가 인간 개인의 역량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는 넘어져도 하나님은 넘어지지 않는다. 나는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내가 넘어지는 것을 알고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본인이 나 대신 죽어서 구원을 이루는 것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예수님의 모습이 본문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수전절에 오셨다. 수전절은 마카비 혁명 이후에 더러워진 성전을 깨끗케하고 성전을 봉헌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런데 지금 참된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 어디에 있는가. 솔로몬 행각에 있다.(23절) 성전의 가장 바깥으로 외진 곳이다.

성전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나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옆에 계신데 그분을 홀대하고 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해서 주를 모시는 절기에 예수님을 밖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의 그림자인 인간이 지은 성전을 숭배하고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아무리 율법을 지키고 노력을 해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을 부숴야 실체가 보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전이신 자신을 죽여서 우리로 하여금 실체인 그리스도 예수가 보이게 하셨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이것이 바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것의 실제이다.

인간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몰아내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적으로 이들을 찾아오고, 지속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구원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구원은 우리로부터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측량할 수 없는 그 분의 은혜로, 그 분이 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란 내가 이 모양, 이 꼴이기에 주께서 나를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인간들이 모여서 열심과 정성을 통하여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분의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우리를 구원해 내심을 전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나의 절망과 어리석음과 실패가 나의 구원을 방해하지 않는다. 우리의 희망은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이 나를 소유하셨기에 우리의 인생은 포기될 수 없다. 그것이 신자가 오늘 웃을 수 있는 이유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설교 예화에 등장한 코너스톤 교회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가.

3. 내가 교회에서 하는 봉사를 아무도 안 알아주고 모른다면 얼마나 그 일을 계속할 수 있겠는가

4.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계심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일이 있었는가.

5. 교회를 섬기며 실체인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나에게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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