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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2021. 사도행전 강해(52) 왜 예수를 믿는가. 행22:30~23:11절

바울은 그의 인생의 전부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목표를 향하여 전력 질주를 한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혼선을 빚기에 충분한 일들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만일 인생의 목표가 예수가 맞다면 그 과정 속에 어떤 성공, 진보 혹은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의 길에 대한 회의와 의심이 들어야 함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후회가 없어 보인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기독교의 최정점에 있는 신인 하나님은 신자 한 사람에게 무엇을 목표로 두고 있으며, 신자가 예수를 믿어서 이 땅에서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을 심문하려던 천부장은 그가 로마 사람인 것을 알고 급히 공회를 소집한다. 공회는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기관이다. 그 앞에 선 바울이 무슨 말은 했는가.

● 공회 앞에선 바울

바울은 공회에서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고 말을 한다.(1절)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제사장이 바울 곁에 있는 사람에게 ‘그 입을 치라’고 명령한다.(2절) 뭐가 문제였는가.


그것은 바울이 자신의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이라는 말은 곧, 바울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은 하나님을 반하여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제사장은 자신을 모욕한 것으로 느꼈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것은 성경에 나온 용어의 정의들이, 세상 사람들 혹은 다른 종교에서 쓰는 용어들과 공통된 개념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 큰 원인 중 하나이다. 우리는 영원, 초월 등의 영적인 것을 통하여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추구하는 종교이다. 그렇다면 이런 물리적인 세계에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영적인 것은 우리가 확실하게 경험하거나, 내 것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 어느 누구도 죽어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에게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인 차원에 있는 우리는 그 영적인 것을 표현할 때에 우리가 사는 차원에서 정의된 용어들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용하는 ‘믿음, 천국, 구원’이라는 개념은 물리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용어로 표현하고 규정했다. 이 개념으로 우리의 세상을 보고, 성경을 보니 우리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가 너무 많은 것이다.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은 전혀 우리의 언어로 해석이 안되는 말이다.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것은 분명히 구원의 주체가 ‘나’이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믿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고 하나님이 다 하신다고 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으면 , 그 믿음을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구원을 받았는데 쟤는 구원을 못 받은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는 믿음을 안 준 것이 되기에 하나님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난다. 그렇기에 ‘믿으면 구원 받는다’라는 말에 대한 반감이 생겨서 예수 못 믿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물리학에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물질의 가장 기본 입자인 원자의 행동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 세상에서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의 이론이 우리의 직관과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는 우리의 경험과 상식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이 영자역학을 우리의 언어로 설명하는 순간 엉망진창이 된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무소부재, 구원, 천국의 개념 등은 결코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쓰였기에 당연히 말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구원을 철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아주 단순하게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셨다.

그것은 “예수만 믿으면 구원 받는다”이다. 이 말에는 어떤 오해도, 헷갈림이 없다.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도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공회에서 발언한 이후, 그 밤에 그에게 나타나 ‘예루살렘에서 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라’며 그를 위로했다. 예루살렘의 일을 칭찬한 것이다. 반면에 그의 고난 역시 로마에서도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바울이 이를 두고 하나님 앞에 항거함이 없다. 무조건적인 순종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그가 루스드라에서 잠깐 절명했을 때에 천국을 경험했었기 때문이다.(고후 12:4) 그 후 그의 시각은 이 땅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고정했다. ‘삶’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상반된 개념인 ‘죽음’을 이해해야 한다.


죽음 이후에 대한 확신과 온전한 이해가 있는 자는 이 땅에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깨달은 자의 삶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삶하고 절대로 같지 않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신자에게 요구하는 목표요,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이 땅에서 얻게 되는 최종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사업에 성공을 하고, 병이 낫고, 자녀가 잘되고, 명예를 얻는 것은 아주 소극적인 신앙의 시작이다. 물론, 이 소원과 바람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우리에게 주는 더욱 큰 유익은 이것 이상이다. 그것은 이러한 가시 세계를 초월한 영적이고 무한한 세계를 알 수 있기에 오늘의 어떠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밀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로마에 간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감옥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옥중서신 4권을 쓴다.(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하나님 나라를 본 사람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장중에 붙잡힌 삶을 살 수 있기 가능한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이해하는 ‘믿음’ ‘천국’ ‘구원’을 나의 말로 설명해 보라.

3. 예수 믿어서 나에게 좋은 점은 무엇인가. 가정, 직장, 사회생활, 인간관계 등...

4. 기독교의 변천 과정 안에 있는 교제, 철학, 제도, 문화, 기업 중 나는 어디에 주로 있는가.

5. 내가 현재의 위치와 환경 속에서 행할 수 있는 (남길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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