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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2021. 사도행전 강해(51) 하나님, 나의 하나님. 행22:1~11절

바울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에 있을 때에 정통 유대인들이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바울을 옭아매고 그를 성전에서 끌어내어 매질하기 시작했다. 그 때 매 맞아 죽기 직전의 바울을 누가 건져 주는가. 그것은 이방인인 로마 군인 천부장이다.

● 로마 천부장의 등장

천부장이 바울을 건져 내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간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곳에 오기 전에 예언자 아가보를 통하여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당하고 이방인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라 예언 받았다.

이것을 모면하기 위하여 빌립 집사 가족이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말렸었고, 야고보는 율법주의 유대인으로부터 바울이 해를 당할까봐 바울에게 정결 의식을 행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바울은 이에 순종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정통 유대인을 통하여 아가보의 예언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선택이 가능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가게 되는 것을 반증하는 한 예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전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방인 천부장이 유대인 바울을 구출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바울을 얼마 전에 소요를 일으킨 애굽인으로 착각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할 무렵에 한 애굽인이 메시야라고 유대인들을 현혹하다가 로마군에 진압을 당하여 광야로 도망친 일이 있었다.(38절)

때 마침 유대인들이 바울을 단체로 매질을 하기에 천부장은 그 사기꾼 애굽인이 붙잡혀서 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 사기꾼 애굽인을 체포하여 로마에 공을 세우기 위하여 바울을 체포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아한 점이 있다. 로마 군인이 바울을 영내로 들쳐 매고 갈 때에 유대인들이 소리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바울을 죽이라는 것과 죽여야 하는 거짓 증거들을 대며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방 그 애굽인이 아니라는 것을 천부장이 알았을 터인데 그냥 군인들이 바울을 매고 영내로 들어가게 한다. 왜 그랬는가. 그것은 그가 로마 사람이라 유대인들이 하는 히브리 방언(아람어로 추정)을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37절) 그러니까 못 알아들어서 바울을 살려 낸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바울이 매질을 당할 때에 그것이 성전 앞이라 천부장이 빨리 달려 올 수 있었던 것, 이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애굽인 선동자가 도망간 일, 그리고 천부장이 로마 사람이라 히브리 방언을 못 알아들어서 바울을 체포하여 영내로 보호하여 들어 온 일. 이 몇 가지의 일 중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아마도 바울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요, 섭리이다. 우리에게 우연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 여겨지는 일일지라도 마치 톱니바퀴가 맞듯이 준비된 하나님의 계획이며 예비하심이다.

● 바울의 변호

천부장을 통해 유대인들을 향하여 발언할 기회를 얻은 바울은 이들을 향하여 자신을 변호한다. 그 내용은 앞서 9장에 있었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다. 9장은 누가의 객관적 기술이라면, 22장은 바울의 개인적 간증이다. 이 두 가지를 같이 봐야 하나님의 일하심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은 이 간증을 통하여 한 가지를 집중하여 전한다. 그것은 바울 자신이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라는 것이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단어는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이 곧 은혜라는 말이 성립되려면 선행돼야 할 내용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난 이것을 누릴 자격이 없는 자라는 것에 대한 인정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결코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 불신자일 때와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겸손, 온유, 정의로움에 대한 변화의 차이가 아니다. 내 인생이 누구 손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게 가장 중요한 차이다. 그 차이에 대한 인지가 없이 여전히 깨끗하고 바른 삶을 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아직 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신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존재와 인격 속에 얼마큼의 위치를 장악하고 있는가가 그의 신앙의 깊이를 대변한다.

바울은 예수를 믿은 후에 그 모진 고통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담대히 예수를 전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고, 내가 이루어내야 할 사명의 길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믿는 믿음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가 세상을 당당함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간증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의 주관자이신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는 것을 경험해야한다. 하나님이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현실 속에서 세상의 복을 누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어려움을 통해서이다.

고통과 고난이 찾아오면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한다.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는데 기도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이 되면 이를 통해서 개인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그 누구 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감사가 차고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다가온 끊임없는 어려움을 통해서이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멀리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하나님을 경험하라. 이를 위해서는 남에게 의지하는 신앙으로는 안 된다. 내가 찾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순종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 속에서 반드시 이 부분을 지켜 나가야 한다. 애매한 영성이 아닌, 분명한 신앙의 간증으로 나의 신앙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그 때에 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세상이 기독교에 대한 정서적 반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3.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지금의 현재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4. 내가 보는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신앙이 좋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차이는?

5.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이었는데 모르고 있다가 깨닫게 된 일이 있다면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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