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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2022. 에베소서 강해(15)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5장 15~21절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18절)고 말한다. 무슨 뜻인가. 신자들은 모두가 방언,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뜻인가. 만일 그렇지 않으면 어떤 뜻인가.

● 성령 충만의 의미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성령 충만은 능력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에 그 곳에 있던 모든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았고 방언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베드로는 설교 한 편으로 3천명을 회개시켰고 병자도 고쳤다. 이것은 능력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성경은 성령 충만이 능력이 아닌 성품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바나바를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행11:24) 그가 성령의 뜻과 성품에 부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령 충만이 그 사람의 상태와 인격의 수준으로 얘기한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 사람으로부터 쫓겨난다. 그 때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을 제압하지 않았다. 기쁨으로 그곳을 떠났는데, 이 역시 성령충만이라고 말한다.(행13:52) 무슨 말인가. 성령 충만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성령 충만은 능력적인 부분이다. 신자들이 사역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될 때에 성령충만으로 초월적인 힘을 얻어 행했다. 이것은 내 노력과 의지와 상관없이 부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성령충만은 성품으로 나타난다. 내 삶 속에 내가 이루어 내야 할 성품과 인격으로 표현된다. 즉, 두 번째 의미의 성령 충만은 하늘로부터 거저 주어지지 않는 다. 내가 노력하고, 훈련하고, 연습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성령 충만이 바로 이 두 번째 경우이다. 4장으로 6장에 이르는 내용은 신자의 삶이다. 실천적인 부분이다. 이 때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이 성령 충만이다. 그런데 그것은 능력이 아닌 성품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신령한 노래로 화답, 찬송, 감사, 복종, 존경, 순종 그리고 공경이다.

이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뼈를 깎는 노력과 인내와 결단으로 이루어야 할 내용이다. 그것이 바로 신자가 행하고 가야할 방향이고 그것이 곧 성령 충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 노력이 아닌 기도와 금식을 통하거나 하나님과 독대하여 단 시간 내에 이루어내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의 요구와 실제의 신자의 삶에 갭이 생기고 잡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곤경에 처하고 어려움을 맞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의 모략과 의도로 이 일을 당했다면 우리는 분노한다. 억울함으로 잠 못 이룬다. 그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이 사실을 들고 하나님께 호소하라. 그리고 이 원통함을 이기고 나를 해하려는 자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이 기도를 할 때에 우리가 알게 되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기도해도 용서가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를 사랑할 수도 없고 이를 감사할 수 없는 자신에 놀라게 될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기도의 양과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기도를 통해서 하늘의 위로를 경험하고 진정한 용서를 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그닥 많지 않은 것이 기독교가 담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 이런 일이 생길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때 동원 되는 것이 성령 충만이다.

이 때의 성령 충만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내 몸을 쳐서 죽기까지 복종해야 하는 성령충만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내가 이르도록 내가 노력해서 이를 악물고 그 사람을 품는 것이다. 속이 꼬이더라도 그 사람에게 웃으며 대하는 것이 성령 충만이다.

혹시 이를 위선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것을 위선이라고 하지 않는다. 성숙이라 한다. 정직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험하고 거친 태도로 대한다면 성경이 말하는 성령 충만을 아직 잘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다윗을 존경한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주의 뜻을 이룬 사람이다.(행13:22) 우리는 왜 그가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 되었을까를 연구한다. 그러다가 그가 성품적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떠날 때에 자신을 저주하며 모욕한 시므이를 해하지 않았다. 특별히 다시 왕위 탈환을 했을 때에 너그러이 그를 용서한 것을 보고 감탄한다. 그의 관용적인 모습을 보고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감탄을 한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든든히 선다. 이를 보고 우리는 그의 인자하고 자애로운 성품을 닮기에 노력한다.

그러나 사실 다윗과 시므이의 얘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는다. 다윗은 죽기 전 유언으로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지난 날의 시므이의 무례함을 말하며, 죽일 것을 당부한다. 무슨 말인가. 그가 진심으로 시므이를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인내하였고, 하나님은 그것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한 것이다.

그렇다. 성령 충만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내 마음의 변화가 아니다. 속이 썩고 뭉그러지고 답답하더라도, 주께서 지시하고 바라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노력해야 가능한 성품이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능력이 아니다. 모두 다 성품이다.

우리는 이 열매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고 이 열매를 맺는 것이 성령 충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신자가 이루어 내야 할 길이고 방향임을 기억하자. 다윗이 그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굳건히 하였음을 기억하여, 오늘 하루의 내게 주어진 분량을 잘 감당하는 신자가 되자.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다른 교회와 비교되는 우리 교회의 자랑을 한 가지 씩 말해 보라

3. 성령 충만의 두 가지 의미인 능력과 성품 중에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왜 그런가

4. 내가 노력하고 훈련해서 변화된 나의 성품이 있다면 무엇인가. 특별한 비결이 있었는가.

5. 내가 위선이라고 생각되어서 잘 안 되는 성품은 무엇인가.

6. 내가 다윗의 입장이라면 시므이를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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