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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2021. 사도행전 강해(44) 반쪽 신앙. 행18:24~19:7절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를 거쳐서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간다. 이것으로 2차전도 여행을 끝내고 얼마 후 다시 3차전도 여행을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지나 에베소에 이른다.


● 에베소에서의 사역

바울은 에베소에 들었을 때에 아볼로라고 하는 유대인을 만난다. 그는 후에 고린도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로 바울과 견줄 정도로 성장한다. 성경은 그를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 언변이 좋고 성경에 박식한 자로 소개한다.(24절)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이집트 도시이다. 로마의 4대 도시 중의 하나로 헬레니즘 문화의 세계 최대의 도시이다. 인구가 약 100만명 정도 되었으며 헬라문화, 히브리문화, 문법, 수사학, 천문학, 기하학 등이 발달한, 말 그대로 경제, 문화의 거점 도시이다.


아볼로가 이 지역 출신이라는 말은 ‘학문과 지식이 풍부한 지성인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에베소에 오기 전에 이미 예수를 믿은 사람이다. 그는 에베소에 당도해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던 중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난다.


이 부부가 아볼로를 집으로 데려가 말씀을 자세히 풀어 가르쳐서 온전한 신앙을 갖게 도움을 준다. 이 간단한 사실로 몇 가지 아볼로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다.


1) 아볼로의 인격 : 아볼로는 학자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학자가 아닌 천막 제조자이다. 그런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겸손하고 열린 사람이라는 뜻이다.


2) 반만 아는 신앙(반쪽 신앙) : 아볼로는 열심을 갖고 말씀을 가르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아는 것은 요한의 침례까지만 안다. 반쪽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인이 이 부부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배운 예수에 대한 얘기를 설명할 수 없고, 구약에 나온 그리스도의 그림자와 매치시켜서 말할 수 없다면 아볼로와 같다. 이런 자는 구원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바른 신앙을 갖지 못했기에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구약과 신약을 풀어 준 후에 그는 변했다. 아가야(고린도)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며 믿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고, 율법을 가르치는 유대인들을 논쟁에서 이기는 자가 되었다.(27,28절)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안 된다. 배우고, 익혀서 말씀이 내 것이 되어야 바른 신앙인이된다.


당시 이 반쪽 신앙의 문제는 아볼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에베소에 있는 어떤 제자들도 그러했다. 그들 역시 요한의 침례만 받았고, 성령에 대한 얘기는 들어 보지도 못한 자들이었다. 바울이 그들에게 침례를 주자마자 이들이 바로 방언과 예언을 했다. 그럼, 요한의 침례와 성령 침례는 무엇인가.


● 요한의 침례 vs. 성령 침례

먼저 성령 침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부어주심’이다. 성령의 내주는 임재, 거하심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성령의 내주는 성령이 언제 내 안에 들어왔는지를 알 수 없다. 반면에 성령의 부어주심은 내려오심, 임하심으로 표현이 되며 성령이 내주하고 계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외적현상이다.


이것은 눈에 들어나는 방언, 환상, 예언 등으로 나타나기에 쉽게 알 수 있지만, 내주하는 자 모두에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두 번째 성령의 부어주심이 바울이 에베소 제자들에게 침례를 줄 때에 나타난 ‘성령 침례’이다.


그렇다면 요한의 침례는 무엇인가. 이는 구원을 이루는 침례가 아니다. 단지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침례이다. 침례 요한은 이를 위하여 온 것이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그를 영접하도록 준비하는 자로 이 땅에 부름을 받았다.(마3:3)


그가 백성에게 한 사역은 회개이다.(마3:2)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다. 회개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구원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또한 회개는 구원 받은 자들에게서 마땅히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회개해야지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요한의 침례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구원은 회개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만나서 그가 내 인생의 구원자라는 온전한 고백 속에 성령의 침례를 통한 내주, 그 인치심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구원은 예수 없이 불가능하다. 내가 아무리 스스로 잘못했다고 외치고, 가슴을 쳐도 그 안에 예수가 없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 그런데 본인이 회개했으니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예수님이 등장하기 이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면,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 기독교의 회개이다.


침례 요한은 이것을 정확히 구분하여 자신의 침례는 구원을 이루지 못하나,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 침례는 구원을 이룸을 분명히 전하였다.(마3:11,12)


그렇다면, 요한의 침례만 받은 자와 성령 침례를 받은 자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요한의 침례를 받은 자는 자신의 행위(회개)에 묶여 있기에 삶의 누림이 없다. 죄를 지을 때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린다. 하지만, 성령 침례를 받은 자는 견고한 반석 위의 신앙이 된다. 성령이 내 안에 거하여 구원에 이를 때까지 함께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담대함으로 이 땅을 산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 속에 거하게 된다.


예수를 믿는 신자에게는 더 이상 심판은 없다. 사망에서 생명을 옮긴바 된 인생이다.(요5:24) 우리가 세상에 자꾸 지는 건, 어쩌면 자신이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믿음은 우리의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 믿음이 우리를 요한의 침례에서 성령 침례의 자리로 이끌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나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가. 그렇거나, 혹은 그렇지 않으면 왜 그런지를 말해 보라

3. 성경을 열심히 가르치거나, 설명했는데 잘못 가르치거나 전한 적이 있었는가. 그 때 어떻게 했는가

4. 요한의 침례와 성령 침례의 구분을 내 말로 풀어서 설명해 보라

5. 회개를 한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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