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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2022. 에베소서 강해(8) 분리에서 하나로. 엡2:11~22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선민사상이 아주 강했다. 이로 인해 자신들과 다른 문화, 다른 생활 방식, 다른 사고들은 다 틀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택한 것은 그들이 타민족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른 민족과 열방에게 구원을 전할 ‘책임’을 맡긴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택함을 우월과 권리로 여기고 타 민족과 자신을 분리시켰다.

에베소서는 이 땅에 세워진 교회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하나 된 기관이며, 그 연합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나 된 그의 몸이다. 그 하나 된 교회를 깨는 가장 무서운 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리’이다. 유대인들은 자신을 타민족과 분리했고, 그것이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하나 됨을 방해하는 분열의 근원이 되었다.

이 분리하고 구분 짓는 행위는 초대 교회 때부터 항상 교회를 깨고 분란을 만드는 결정적인 도구였다.(행6장, 고린도교회의 예) 그럼 어떻게 분리에서 벗어나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는가.

1. 생각하라 (11절)

‘생각하라(헬.므네모뉴오)’는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기억하라’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니까, 바울은 교회의 하나됨을 이루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과거의 나의 모습과 형편이 어떠했는지를 ‘기억하라’고 얘기한다.

분리를 당했던 이방인들에게는, 이전에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밖에 있었던 처참했었던 자였음을 기억하라는 것이고,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을 할례 받지 못한 자라 분리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자였음을 기억하라고 얘기한다. 무슨 말인가. 너희의 본래의 모습은 아주 보잘 것 없고, 형편없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분리를 하거나, 당을 짓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우월감을 버려야 한다. 지금 현재 괜찮아 보이는 내 모습은 본래의 내가 아니다. 과거의 나는 형편없는 자였으며 지금의 내 모습도 가면을 벗으면 여전히 그 누구보다 잘나지 않았다. 이것을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야 한다.

우리 인간에서는 여전히 죄성이 있다. 방심하면 언제든지 그 이전의 죄악된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거룩해 보이고 성결해 보이는 그 무엇일지라도 그것이 쉽게 죄의 도구로 사용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종교적이고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앗차 하는 순간 그것이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되고, 나를 대변하는 위치가 되어 죄악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율법, 성전, 예배는 거룩한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거룩함마저도 자신들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신앙의 이름으로 타인과 나를 구분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비방으로 나의 우월함을 자꾸 증명하려 한다.

교회 안에서 필요한 것은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누군가보다 낫지 않다. 또한 우리 중 그 누구도 누구보다 못하지 않다.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판하려 할 때에 내 누추했던 과거를 기억하라. 그것이 분리에서 하나를 이루는 교회의 시작이 될 것이다.

2. 갇힌 사고 깨기(14절)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이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결코 상식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상식적인 구원은 나를 대적하는 세력을 무력으로 물리치고 승리를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정형화된 사고를 완전히 깨뜨렸다. 그것은 무력으로 인한 정복이 아닌 사랑으로 인한 희생이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방법이었다.

이 정형화된 것을 깨뜨렸다는 말이 ‘예수님께서 막힌 담을 허셨다’는 것이다. (14절) 당시 성전에는 이방인이 거하는 뜰과 유대인들이 거하는 뜰 사이에 담이 있었다. 그 둘 사이를 구분 짓는 담을 예수님이 허셨다. 정형화된, 결코 부서뜨리거나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을 깨부수고 하나로 만드셨다.

교회가 분파가 생기고 마음이 갈라지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신앙의 색깔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편을 가르고, 금지를 시키고, 아니라고 대립하는 것이 막힌 담이다. 내가 오랫동안 갖고 있는 정형화된 신앙의 형태와 색깔로 인하여 다른 이와 구분을 짓고 있다면 그것이 곧 막힌 담이다. 이것을 깨부숴야 만이 교회는 분리에서 하나로 갈 수 있다.

3. 서로의 다름을 인정(22절)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간다’고 한다. 이것은 서로의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의 건물이 만들어짐을 의미한다. 공사 현장에서 제일 보기가 좋은 것은 같은 물건끼리 정리해 놓았을 때이다. 벽돌은 벽돌대로, 시멘트 부대는 시멘트 부대대로, 모래는 모래대로, 이렇게 같은 것끼리 있을 때 보기가 좋다. 그러나 이렇게 두면 이곳에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건물이 지어지려면 시멘트와 모래가 융화를 이루어야 한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가 들어가야 붙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께서 거할 처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달라야 하고, 다른 것들이 하나로 융화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집이 완성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사람이다. 그리고 신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이 모여서 참다운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같으면 안 된다. 서로 다른 것이 마땅하고 달라야 바른 성전이 지어진다. 다만, 이것 하나를 잘 지켜야 한다. 그것은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박아 넣어야 한다.(20절)

그 모퉁이 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하고 맞추어 나간다면 아름다운 공동체, 화목을 이루는 공동체로 지어질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실천이다. 이것을 마음과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옮겨 갈 때에 분리에서 하나로 세움 받는 교회로 한몸교회가 서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교회 안에서 누군가를 '분리'했거나 당한 적이 있는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가.

3. 과거의 나는 부끄러운 자였음을 인정하는가. 그렇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면, 이유를 말해 보라.

4. 남을 향하여 비판과 비방을 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5. 나의 신앙의 갇힌 사고를 깬 적이 있는가.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신앙의 유익이 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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