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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5.2023. 호세아서 강해(9): 두 마음 vs. 한 마음 호10:1~12절

Updated: Feb 8

호세아서는 4장부터 13장까지 하나님의 강한 심판을 얘기한다. 본장에서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가 거품처럼 멸망할 것과 전쟁 후에 이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은 예언한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이스라엘이 두 마음(갈라진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이 두 마음을 품은 신자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며, 내 마음이 갈라져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두 마음 : 자신을 과신함

호세아는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고 한다.(1절) 그런데 이 ‘무성한(히.바카크)’이라는 단어의 원어의 뜻은 풍성한의 의미가 아니다. '비어있다(empty)'는 뜻이다. 이 ‘바카크’는 구약에 총 6번 사용되었는데 본 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공허하고 텅빈 상태를 의미하는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됐다.(e.g.사24:1) 즉, ‘바카크’는 앙상하게 텅 비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 맞는 번역인 것이다.

왜 호세아는 이런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했는가. 왜냐하면 ‘앙상하게 텅빈 포도나무’와 ‘풍성한 열매’가 성경이 제시하는 ‘인간’과 ‘하나님의 은혜’에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무엇하나 열매를 거둘 수 없는 앙상한 포도나무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성한 포도나무요, 영양분이 많은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나무에 열매가 많이 맺히게 되면,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잘나고, 내가 노력해서, 내가 맺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그 열매를 하나님께 가져가지 않고 우상에게 가져가 우상을 치장하는 일에 사용하게 된다.(1절)

이것이 두 마음인 상태이다. 이들은 보잘 것 없는 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한다. 내가 노력하고, 준비해서 이루어낸 성공으로 여긴다. 그래서 엉뚱한 곳에 감사를 표하고, 엉뚱한 곳에 열심을 낸다. 당시 이스라엘이 딱 그러했다.

여로보암 왕 시대에 있었던 평화와 안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인 다윗의 계보를 이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정통 다윗의 계보를 이은 나라는 남유다이다. 남유다 초대 왕인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아들이다. 여로보암은 솔로몬 시대의 공사장 감독이었던 사람이었는데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다윗이 섬겼던 여호와 하나님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우상을 좇았고, 이웃 강대국들을 거짓 맹세로 혈맹을 맺어 그들을 통하여 나라를 지켰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지혜로 여겼다.(4절) 내가 노력과 열심으로 나를 지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두 마음이다.

만일 우리 중 누구라도 내 힘, 내 노력, 내가 맺은 인맥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두 마음을 품은 자이다. 내가 아무리 준비해도 하나님이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난다. 이것에서 속히 돌이켜 아주 작은 일이라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내 인생의 길을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을 모두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

● 두 마음 : 영적 무감각

본문에 등장하는 한 도시 이름이 있다. ‘벧아웬’이다.(5절) 이 이름의 뜻은 ‘허영의 집, 허무의 집’이다. 사실 이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호세아가 조롱의 의미를 담아서 부른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의 이름은 뭔가? 그것은 ‘벧엘’이다. 벧엘은 아브라함이 처음 제단을 쌓은 곳이며(창12:8), 야곱이 돌베게로 단을 쌓아 예배하던 곳이다.(창28:19) 벧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 중심지였고,(창35:1) 이스라엘의 영적 구심점 역할을 감당하던 곳이다.(삼상7:16) 그런데 그런 성스러운 곳이 여로보암 왕이 금송아지를 세운 후에는 점점 시간이 갈수록 우사으이 도시가 되었고, 그 금송아지가 자랑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변질이 되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말씀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바알에게 기도했더니 자기가 구하는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는 간증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알신에게 제사할 지라도 내 안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두 마음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현대의 기독교인들의 대다수가 이러하다. 세상적인 온갖 미신을 다 믿고 있으면서 교회만 나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공부는 전혀 없이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서 자신의 신앙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두 마음이다. 그렇다면 한 마음은 무엇인가.

● 한 마음: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둠

호세아는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한다.(12절) ‘공의(히.쩨다카)’란 무엇인가. 공의는 ‘완전히 의로우신 하나님의 의, 그 성품이 반영된 상태’이다.(옥스포드 원어 성경) 그럼, 하나님의 그 완전한 의가 내 안에 반영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 절대 불가능하다. 공의로 보이는 것을 심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완전한 하나님의 공의를 내 안에 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인애를 거두려면 하나님의 공의를 심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공의를 심을 수 있는가.

성경에 등장하는 '의(righteousness)'는 언제든지 또 다른 이름으로 교체가 가능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교체할 수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이다. 인애는 ‘헤세드’ 즉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unfailing love)이다.

그렇다면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는 뜻은 이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심고 즉, ‘하나님의 은혜’를 심고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을 거두라는 것이다. 그렇다. 호세아가 계속해서 울부짖는 내용은 사실 단 하나이다. 여로보암이 무너뜨렸던 다윗의 왕조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가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갈라진 두 마음’이 아니라, 온전한 한 마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지금이 우리 하나님을 찾을 때이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이다.(12절) 나의 힘과 공로가 아니라, 온전히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여 내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심을 때에, 하나님의 그 폭발적인 은혜를 심을 때에 하나님의 공의, 그 은혜가 우리에게 비처럼 쏟아 부어지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마르고 앙상한 가지라는 것을 알게 된 일이 있는가. 언제 그것을 알게 됐고, 그 때 무엇을 느꼈는가.

3.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을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4. 하나님이 내 인생의 길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 있는가. 나누어 보라

5. 내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심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생각하는 바를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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