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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9.2023. 호세아서 강해(8): 바알의 제사 vs. 하나님의 제사. 호9:1~10절

Updated: Feb 3, 2023

본문은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선포하는 총 9편의 설교 중에 다섯 번째 설교의 일부분이다. 이 안에 담겨진 바알의 제사와 하나님의 제사를 비교해 본다. 먼저, 예배에 대한 정의를 살펴본다.

●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란,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응답(반응)’이다. 이 정의에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하여 자신을 보여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신이며, 나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는 가를 나타내 보여 주신다. 이게 우선이다.

독일어로 예배는 ‘Gottesdienst’이다. 이 말을 직역하면, ‘하나님의 봉사’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언가를 준비하시고 섬기신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다른 종교와 다른 기독교만이 가진 독특성이다. 이를 잘 보여준 예화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혼인 잔치를 치른 주인이 돌아와서 기다리고 있는 종에게 식탁에 앉혀서 그들을 섬기는 상황을 말씀하셨다.(눅12:37)

이것이 예배의 시작이다. 예배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나에게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의 예배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 희생과 온전함을 바쳐야 한다.(롬12:1) 그런데 이것은 내가 노력하고 결심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이 오늘도 나를 위하여 행하고 계신 사랑을 깨닫는다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나를 산제사로 드리는 일이 가능해진다.

만일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반응이 나올까. 그 때에는 기뻐 뛰며 춤을 추는 일이 나온다. 예배가 축제요, 잔치가 된다. 느헤미야 때에 이런 반응들이 있었다. 백성들이 수문앞 광장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했다. 그 때 백성들에게 먼저 말씀을 읽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깨닫게 했다. 그 때 모든 백성들이 반응이 울며 회개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때 느헤이야가 그들에게 한 얘기는 울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고,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잔치를 벌이라고 한다.(느8:10) 이것이 예배이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감사제사(맥추절 or 초막절)’로 하나님을 예배한다. 이들은 이 제사를 통하여 잔치를 벌인다. 제물을 바치고,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기뻐한다. 분명히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뻐했다. 그런데 뜻밖에 하나님이 이를 보고 진노하셨다. 그리고 당장에 제사를 거두고, 기뻐하지 말라, 내가 그들의 죄를 벌하겠다고 선포하셨다. 이들은 기뻐하며 감사로 하나님을 예배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대노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가르쳐 준 방법으로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시 바알신을 섬기는 방법으로 예배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를 음행이라고 하시며 진노하셨다.(1절) 학자들은 이들의 예배를 보통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음행’이라는 단어를 두고, 바알신에게 제사하던 난잡한 성행위를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또 다른 하나는 ‘우상에게 몸을 드림’(10절)이라는 말로 비추어 봐서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는 제사법일 것이라 생각한다.(왕상18:28)

이들은 최선을 다하고 성심으로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 이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는 경고를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예배에 마음을 쏟고,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로 눈물을 쏟고, 우리 안에 강같은 평화가 흐른다.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치유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예배를 하나님이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놀라움이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 그것은 우상에게 드리는 제사는 오로지 내 헌신과 희생이 주가 된 제사이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먼저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계시하시는 것을 놓치고 나의 정성과 노력에만 집중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사가 된다. 이방신을 섬겨도 예배 후에 기쁨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쁨과 우리의 기쁨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 크리스찬의 기쁨

우리와 그들의 기쁨의 차이는 ‘본질의 기쁨’인가, ‘현상의 기쁨인가’이다. 이들이 추수감사제사를 드리며 기뻐한 이유는 곳간에 곡식, 포도주, 떡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감사는 내 손에 주어진 결과가 만족해서 드리는 감사이다. 현상의 기쁨으로 인해 그것을 준 신에게 감사한다.

우리의 감사는 다르다. 가장 본질적인 감사,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인 것으로 인한 감사이다. 이 감사는 내게 주어진 어떠한 결과와 상황과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붙들고, 주관하시고, 이끄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나오는 감사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예배이다.

우리의 예배는 내가 무엇을 하는 것에 중심이 있지 않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행하셨는가,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에서 포도를 보는 것 같고, 무화과 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다고 하신다.(10절) 정말 귀하고 보배롭다는 것, 내가 너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 사실이 예배 중에 확인이 된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찬양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손에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 기쁨을 놓친다. 특별히 타인과의 비교에 의해서 우리의 영적인 풍요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현상에 의한 기쁨을 가진 자이다. 우리가 가진 기쁨은 가장 본질적인 것, 즉,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인격의 자리에 초대하셨다는 것과 나의 실수와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는 자는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끓어오르는 기쁨이 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처한 가장 극한의 상황 속에서 주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고 아침마다 새롭다고 노래한다.(애3:22,23) 그가 이렇게 기쁨으로 찬양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환경이라는 현상을 통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는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으며,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본질적인 감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바알의 제사가 아닌 하나님의 제사가 회복돼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게 있어서 예배는 무엇인가. 평소에 내가 갖고 있었던 예배를 정의해보라.

3. 나의 감사가 '본질의 기쁨'인가 '현상의 기쁨'으로 인함인가.

4. 내가 최근에 가장 많이 한 감사는 무엇인가.

5.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확인한 최근의 예배는 언제였는가. 예배 중 무엇을 통해서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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