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며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 기도를 그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 내용, 이 정신, 이 방법, 이 원칙’대로 하라는 뜻이다.
주기도문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그것은 ‘첫째: 간결하다(짧다), 둘째: 짧다, 셋째: 깊이가 있다’이다. 또한 ‘하늘에 계시 우리 아버지여’라는 짧은 문장 안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세 가지 부분으로 말씀하고 있다.
1.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의미
히브리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하늘’에 대한 개념은 주로 3가지로 구분을 한다.
1) 구름(대기권) 아래의 하늘 2) 천체(天體)의 하늘 3) 영적인 천상 세계(삼층천)으로 구분한다. 그렇기에 성경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하늘은 ‘복수’로 기록이 되어 있다(약 420회).
위의 3가지 중에 하나님이 계신 하늘은 어디인가? 그곳은 위의 세 곳 모두 다이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하늘에 계신’이라는 뜻이 원어에는 ‘하늘들’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곳에 편재해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우리가 상상하고 생각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신 분이심을 의미한다.
요즘 크리스천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있지 않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안 믿는 것이 아니라, 있기는 있는데 못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우리의 이러한 편협한 사고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를 제한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우리의 상식과 판단과 이성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사55:8). 우리는 이 길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몸부림치며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는 제한돼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전혀 다른 길을 준비하여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것이 가능한 절대능력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은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진다는 것의 의미는 나의 관심이 ‘나’에게서 ‘남’으로, ‘우리’로, ‘공동체’로 흘러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요 우리의 기도가 이기적인 기도에서 이타적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성숙한 기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전지성을 믿고 하는 기도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의 경쟁업체를 향하여 기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그 집을 축복하는 기도를 하면 내게 올 복이 그 집으로 간다’는 생각 때문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며, 기도 응답의 주체가 나이기에 복을 받는 절대적인 요인이 나에게 기인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성경은 오히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하여 ‘내 것을 주면, 그 복이 내게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준다(눅6:38)’고 얘기한다. 우리의 기도가 내 욕심에 국한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할 때에 오히려 내 인생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합당한 복을 누리는 인생으로 인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인지이다.
3. 아버지 하나님
오늘 본문에 쓰여진 ‘아버지’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파테르(Pavter)’이다. 이 단어는 본질과 본체가 동일한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게만 쓰였던 단어이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로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만이 가능한 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참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와 본질과 본체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단어를 우리에게 쓰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슨 의미인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가능하게 되었다. 사실, 구약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경우는 여러 차례 등장한다(‘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사64:8’). 그런데 이 때 쓰이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브’라는 단어인데 이 말의 뜻은 ‘우두머리, 족장’의 의미가 더 많다. 그러나 ‘파테르’는 본질이 같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예수님을 유대인이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성 모독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경외의 하나님(아브)와 아버지 하나님(파테르)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내 형편과 상황을 잘 알고 나를 이해해 주신다는 이야기이다. 특별히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왜 이 두 호칭을 다 사용하셨을까? 그것은 이런 의미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부친을 아빠라고 부른다. 그 때는 의미도 뜻도 모른다. 항상 내 곁에 계셔서 나를 지도하시고 보살펴 주시는 분이다. 또한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반대하시고, 때로는 매를 드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고 가정을 갖고 자녀가 생기면 그 때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한다. 왜 나에게 매를 드셨는지 왜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기를 쓰고 반대를 하셨는지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아빠와 다른, 아버지에 대한 개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로는 이 고통이 너무 커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억울해요. 하나님이 정말 내 아버지가 맞나요? 전 왜 맨날 이렇게 살아야해요. 왜 나만 갖고 그래요’라고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은 이해할 수 없으나 그분을 직접 보는 그 날이 오면, 지금까지 내가 겪은 모든 일이 왜 일어난 사건이며, 아버지 하나님이 내 앞에 왜 이런 일을 두셔야 했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고전13:12)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다. 우리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잘 아시고 이해해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우리의 전 생애를 내어 맡길 때에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내 삶 속에서 체험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나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믿는가? 믿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면 나누어 보라. 또한 어떻게 믿게 되었나?
3. 내 생각과 다르게 응답되었던 기도의 사례를 나누어 보라
4. 내가 남을 위하여 기도를 하기 어려운 마음이 있다면 무엇 때문인가?
5.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내가 받는 느낌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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