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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짓 하나라도 (05.05.2019)

어느 교우분의 수고와 헌신 덕분으로 펜실베니아 랑캐스터에서 공연 중인 성극 “JESUS”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예전부터 많은 분들이 반드시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얘기를 익히 들었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극장의 웅장함과 공연의 스캐일은 제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최첨단의 현대 기술이 도입된 연극은 예수님이 설교 하시던 동산의 내음도, 풍랑을 잠재우시던 때의 바닷바람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의 하늘의 천둥과 번개도 그대로 재연하여 마치 2,000년 전 현장 속에 내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공연은, 하늘에서 땅으로, 무대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을 넘나드는 현실감있는 배우들의 연기와 온 무대를 수 놓은 화려한 색상과 가슴 뛰는 음악이 어우려져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제 눈에 유독 계속적으로 사로잡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화려한 배우들의 연기 뒤에 숨어 있는 조연, 아니 엑스트라에 가까운 자들의 연기였습니다.

주인공인 예수 혹은 베드로가 무대의 오른쪽 끝에서 관객들의 숨소리 마저도 빼앗아 갈만큼 열연을 펼치고 있을 때에 반대쪽 가장 끝자락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도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무언가 서로 웃으며 얘기하는 자, 이불을 널고 있는 자, 양동이를 들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계속 옮겨 다니는 자, 기지개를 피며 거니는 자 등등... 어쩌면 아무도, 그 누구도 쳐다 보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위치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만일 이들이 없는 무대는 어떨까싶어 그들을 머리 속에서 지워봤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주인공의 연기와 작품의 내용이 아주 우스워졌습니다. 압도하는 스캐일도 사라지고, 동네 소극장에서 보는 듯한 촌극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때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이 주인공 되게 하는 것에는 이들, 엑스트라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이 있기에 이 연극의 위대함이 살아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저는 갑자기 감동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그 누구도 쓸모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내 자신이 삶의 무대에서 엑스트라 같고, 늘 변변하지 못한 삶을 살아내는 것 같더라도 그 역시 하나님이 계획한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자의 삶은 그런 것입니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을 그저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큰 무대 안의 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내가 없다면 거창한 무대도, 기가 막힌 작품도, 감탄할 만한 스토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주 앞에 욕심을 내어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내 작은 몸짓 하나, 눈짓 하나 허투르하지 않아서 역사의 주인공 되신 예수님이 빛이 나는 인생을 감당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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