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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5) :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의미. 행2:1~13절 (06.28.2020)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령께서 이 땅에 임하신 사건이다. 왜 성령이 오순절에 임했는가.

1. 성령이 오순절에 임한 이유

오순절이라는 말의 뜻은 유월절로 시작해서 50일째 되는 날이라는 뜻이다. 이 날은 칠칠절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에 안식일(7일)이 7번 지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7은 완전수이다. 그런데 그 완전수인 7이 7번 있다는 것은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이 완벽한 날이라는 뜻이다. 뭐에 있어서 완벽한가. 먼저 안식일에 대한 개념부터 살펴본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이 더 이상 손댈 필요가 없이 완벽함을 기념하는 날이다. 신명기에 보면 이 안식일의 개념이 한 단계 더 진전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로 지킨다.(신5:15)


그러니까 오순절까지 안식일이 7번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은 더 이상 손을 댈 필요 없이 완벽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오순절은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이 완전함을 나타내는 날이고 그것에 대한 징표로 성령이 오신 것이다. 그럼, 왜 성령이 오셨는가. 그것은 칠칠절과 관련이 있다.

칠칠절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날이다. 하나님이 직접 돌판에 쓰셨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언약을 맺었다는 것이다.(렘31:33)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을 어겼다.


이 깨어진 언약을 하나님께서 회복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언약을 회복하는 의미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돌비’에 새겼는데, 신약에서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이 우리의 ‘마음판’에 새겼다고 얘기한다.(고후3:3)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이 오순절 날은, 우리를 족쇄처럼 묶어 두었던 모세의 율법을 성령이 산산이 부숴버린 날이라는 의미이다. 더 이상 우리는 율법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입었음을 성령 하나님께서 확증해 주신 날. 그게 바로 오순절이다.


이것이 요즘 말로 하면 ‘주일’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일을 보낼 때에 단순히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을 넘어서 ‘나의 구원이 이루어진 날’을 기념하며 기쁨과 감사가 담긴 축제와 잔치로 보내야 한다.

2. 성령 강림의 의미

1) 영의 회복

오순절 이전에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항상 거하지 않았다. 들락날락했다. 우리는 처음에 창조될 때에 다른 동물들과 달리 하나님이 손수 흙으로 빚으사 우리 코에 생기(영)을 불어 넣으셨다. 즉, 성령이 거하는 상태로 창조가 되었다. 하지만, 그 후 인간들의 죄악이 만연해지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창6:3)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인 사망을 선고 받은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에 그 하나님의 영, 그 성령이 우리에게 임했다. 무슨 의미인가. 깨어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누가는 의도적으로 성령의 임재 사건을 두 가지로 표현했다. 하나는, ‘온 집에 가득’하고 다른 하나는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고 기술했다. 예전에는 성전에만 임했던 하나님의 영이 각 사람에게 임했다는 것은 우리 각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성도가 ‘교회’가 된 것이다.

교회는 더 이상 건물이 아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성도가 모이는 그 모임을 교회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하나님은 예배당에만 계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도 자신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이 어려운 시기에 집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기억해야 한다. 지금 내 안에, 그리고 그 모임에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마음 다해 내가 선 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받으신다.

2) 언어의 회복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다락방에 모인자들이 서로 다른 언어(방언)를 말했다. 이것과 비슷한 사건이 있다. 바벨탑 때에 모인자들이 똑같이 갑자기 다른 언어를 하기 시작했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같으나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바벨탑 때에 사용한 언어는 서로 못 알아듣게 하기 위함이고, 오순절 때에는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바벨탑 때에 무너진 인간의 언어가 오순절에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제 복음은 유대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에게 알려야 함을 의미한다.

3) 하나님의 사역으로 초대

이제 오순절에 임한 성령으로 인하여 언어가 회복이 되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상한 점이 있다. 이렇게 배우지도 않은 말을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면 굳이 왜 번거롭게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 사역을 맡기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더 큰 기적을 통해서 충분히 혼자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할 수 있는데 굳이 왜 성도들을 쓰시는 것일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본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일을 성령 하나님께 위임하여 더불어 우리를 그 사역에 동참시키고 있다. 그 말은 곧,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의 관계처럼 우리를 대우해 주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 사역에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방언과 각종 은사를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다. 이 성령은 12사도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120명 성도 모두, 각 사람 전원에게 임했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을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자녀로 대우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이 오시니까 병이 나았다. 미운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이 없어졌다’라는 것 이전에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형상으로 회복하시고 예수님처럼 대우하신다는 사실에 놀라야 한다. 우리가 단순히 어떤 은사를 받았다는 것으로 기뻐하기 이전에 우리를 자녀로 부르고 계심을 기억하자. 우리를 부르신 이유와 목적은 사역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자리에 초대된 자임을 잊지 않는 자. 그것이 신자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구약과 신약이 한 맥을 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어떤 생각이 드는가.

3. 개인적으로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은가

4. 오순절 사건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적용해서 말해 보라

5. 나는 최근에 가정에서 예배를 볼 때에 느낌이 어떠한지를 말해 보라. 오늘 말씀을 들은 후에 생길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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