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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18). 마술사 시몬의 신앙. 행8:9~24절. 09.27.2020.

오늘 본문은 사마리아 땅에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가운데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을 한다. 그의 신앙의 모습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교훈 3가지를 살펴본다.

1. 믿음의 내용

‘마술사’의 원어의 뜻은 ‘점성가, 주술사’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마술사 시몬은 사마리아 땅에 있는 이방신을 통해서 신기를 행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가 가진 마술 실력으로 사마리아 성의 많은 사람들의 추종을 받았다.


어느 날 그는 자기보다 훨씬 더 영적인 능력이 쎄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그가 빌립이다. 빌립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는 모습을 보고 침례를 받고, 빌립을 따라 다녔다.

그 후 이 성에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확인 차 사마리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 기도를 하자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본 시몬은 베드로에게 말하여 돈을 주고 그 능력을 사려고 했다. 그 때 베드로는 “은과 함께 망할지어다”(20절)라는 말을 시몬에게 퍼부었다. 우리 신자 가운데 이 시몬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신자에게 나타나는 기적과 영적인 현상들을 내 것으로 취함으로 나의 유익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 마술사 시몬을 보라.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 심지어 그 하나님은 그 어떤 신보다도 놀라운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도 안다. 나를 부자로 만들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병이 불치의 병이라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인 줄 믿는다. 만일,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딱 여기까지라면, 딱 마술사 시몬의 신앙까지 와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은 큰 능력자이다. 나는 그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무엇을 믿는가. 두 가지이다. 그가 나의 ‘구원자(Savior)’라는 것과 ‘주님(Lord)’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내 영혼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는 것과 ‘그분이 나의 주인님’이시기에 나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종이라는 믿음이다.

믿음은 이 싸움이다. 이것은 내가 말씀에 순종하면 손해인가, 유익인가의 싸움이 아니다. 믿음은 그것을 내용으로 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 그것을 통해서 바른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2. 기적의 신앙

시몬은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이다. 이 믿음은 빌립이 행한 표적과 큰 능력 때문에 생겼다. 이처럼 기적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도구’이다. 그렇기에 믿는 자에게는 기적이 따른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기적을 추구하는 신앙’이 아니다. 그런 신앙을 가진 자의 결과에 대한 사례가 ‘마술사 시몬’이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공짜’이다. 그런데 기적을 추구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과 기적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한다.(20절)


이 말은 곧, 내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그것에 대한 대가로 더 놀라운 것을 되돌려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헌금을 많이 드리면 하나님이 나를 더 많이 사랑한다고 믿는 것은 영락없이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사려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네 은과 함께 망할 것’이다.(20절)

그렇다면 헌금과 물질의 복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내가 하는 헌신과 수고가 하나님으로부터 더 나은 대가를 기대하면 마술사 시몬의 신앙이다. 반면에 헌금을 순수한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드리면 기독교 신앙이다.


기독교 신앙은 내가 드리는 물질이 ‘당신의 것이니 당신께 돌려드립니다’라는 마음의 자세이고, 마술사 시몬의 신앙은 ‘이것은 내 것이지만, 제가 하나님을 위하여 이 정도는 아끼지 않고 드립니다’라는 자세이다.

하나님은 헌금의 액수와 양에 따라서 신자에게 주시는 선물을 결정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것으로 결정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다. 돈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헌금의 양과 상관없이 사랑하신다면, ‘이제 더 이상 헌금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아니다. 해야 한다. 왜냐하면 헌금은 ‘하나님을 향한 내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헌금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이 헌금을 통하여 ‘내가 이 땅을 살아가는 근거가 돈에 있지 않습니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만일, 내게 주어진 현 상황에 따라 헌금의 태도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내게 있는 물질을 내 것으로 여기는 마술사 시몬의 신앙이다.

3. 영적 수준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는 각자가 다르다. 그것이 영적인 것이든, 재능적인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gift)이다. 선물이기에 이것으로 영적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을 수 없다. 그러나 이방 종교는, 특별히 영적인 은사의 유무에 따라 신앙의 수준을 기준 삼는다.

마술사 시몬은 그런 사고에 익숙했다. 그렇기에 베드로가 행한 능력을 보고 베드로가 빌립 보다 더 높은 영적인 레벨에 있는 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낼 터이니 이 능력을 달라’라는 소리를 했고, 결국에는 베드로로부터 ‘너는 이 도에 관계없는 사람으로 이 은과 함께 망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20절)

이 말을 들은 시몬은 베드로에게 ‘이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24절) 바로 이 부분이 기독교와 이방 종교의 큰 차이이다. 그는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나보다 영적으로 높은 레벨에 있는 자가 기도해야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베드로는 “네가 회개하고, 네가 기도해서 사함을 받으라”고 얘기한다.(22절). 이것이 기독교이다.

기독교 신앙의 성숙은 누군가의 기도 받는 것을 통해서 성장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가 날마다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교제 속에서 이루어진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시는 나만의 길에 거침없이 서는 것이다. 이 일을 통해서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평범한 진리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마술사 시몬의 신앙에서 참다운 기독교 신앙으로 변화를 받게 된 때는 언제인가. 그 계기는?

3. 예수님이 구원자일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4. 내가 헌금을 드릴 때의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헌금을 투기로 생각했던 적이 혹시 있었는가.

5.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 영적 수준이 높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6. 내가 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잘 안들어 주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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