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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14). 집사 스데반 행6:8~15절. 08.30.2020

성경에 나온 성도의 죽음 중에 가장 장렬하게 그리고 은혜롭게 죽음이 기록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도가 아니다. 평신도 집사 스데반이다. 왜 성경은 스데반의 죽음을 그렇게 크게 다루었는가. 이 스데반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교훈 3가지를 살펴본다.

1. 신자의 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떤 힘으로 살아가는가. 스데반은 죽을 때에 곁에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며 그들을 끌어안고 죽었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예수님이 그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평안히 복음을 전하며 죽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그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힘은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8절) 그럼 이런 의문이 든다. 그가 가진 권능으로 왜 자신의 죽음을 막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왜 기적을 보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


신앙의 삶을 정직히 대면하여 보면 굳이 기적이 필요 없는 일에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데, 정말 생명이 오고가는 일에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갈등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가 행했던 ‘큰 기사와 표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그가 가진 기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막지 못했는가. 그것은 성경의 ‘표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에 나온 모든 ‘표적’은 초자연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과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성경의 표적이다. 그렇다면 왜 스데반은 죽음의 순간에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적을 동원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아주 단순하다. 그는 알았다. 그를 공격하고 비방하는 자들에게 더 이상 초자연적인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기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쏟아지는 돌을 기꺼이 맞기로 결심을 했던 것이고, 죽음이 그의 코 앞에 임박한 순간 속에서도 당담함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적을 보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리이다. 그래서 어떻게해서든 그 시간을 늦추려고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스데반은 그 죽음이 코 앞에 와 있는 순간에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15절)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평안과 그를 향한 믿음이 없다면 결코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기적을 동원한 것이다. 그것은 날아오는 돌이 솜 방망이로 바뀌는 기적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의 순간에도 미소를 지으며, 평안 가운데 눈을 감을 수 있는 기적이다.


그는 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우리의 구원자임을 선포한 것이다. 결국에는 이를 통하여 사람들이 흩어져 더욱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8:4) 그것이 신자의 힘이요. 성경이 말하는 ‘능력’과 우리의 ‘능력’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2. 신자의 삶

스데반은 히브리파 정통 유대인도 아니고,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녔던 제자도 아니었다. 초대교회가 태동한 후에 비로소 예수를 믿은 사람이다. 즉, 평신도 초신자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과 제자들과 똑같은 기적을 행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유대인들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내용, 죽을 때의 모습 등 예수님과 아주 비슷하다. 뭘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신자의 삶이란 예수를 쫓아가고, 예수를 닮아가고,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다. 내 상식과 이성에 동의가 되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주님이기에 마땅히 순종하는 것이 신자의 삶이다.

교회를 예를 들어본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가 교회로써의 존재 목적을 다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된 교회가 머리인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 길 외에 교회가 교회로써 존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신자가 말씀에 순종하려면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교회를 통해서’ 가능하다.(엡3:9~11) 이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교회에 몸 담지 않고, 교회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내 이성과 상식을 앞세우고, 교회를 통하여 한 마음, 한 뜻이 되지 않으면,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과 뜻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로 서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지혜를 보이시기 때문이다.

3. 신자의 순종

스데반과 논쟁을 했던 사람들은 로마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자유의 몸이 된 ‘자유민’들이다. 이들은 스데반과의 논쟁에서 패하자 사람을 사서 스데반이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고소했다. 스데반을 신성모독이라는 명목으로 합법적 사형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 고소의 내용이 성전을 모독했고, 율법을 경멸했다는 것(14절)인데 아주 교묘하다. 스데반의 말 중에 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있는 말을 살짝 바꾸고, 안 한 말을 한 것처럼 더했다. 스데반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짝 비틀어 고소했다.

무서운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은 그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그러하다. 성경 전체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하고 유익하다 생각하는 부분에 머물고, 그 외의 사실은 아무리 얘기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성경의 말씀 중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라는 부분은 외우고 붙잡아 기도한다. 하지만, 성경의 많은 곳에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부분은 절대 묵상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신자의 순종과 하나님이 요구하는 순종이 다르기에 자꾸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길로 가게 된다. 그렇게 살면서 도무지 예수를 믿는 삶에 기쁨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스데반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의 죽음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그의 죽음을 기뻐하셨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창세기로부터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싶어 하셨던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가 무엇인지를 밝히 드러내 보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스데반의 죽음을 이해해야 참된 신자의 순종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나는 어떤 힘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가. 나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3. 순교하는 이들을 볼 때에 어떤 생각이 드는가.

4. 하나님이 내게 원하는 순종과 나의 순종이 달랐던 경험이 있는가.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게 되었나

5.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어떤 구절인가. 왜 그 말씀을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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