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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2023. 요한복음 강해(20). 예수님의 때 요7:1~10절

본문에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태도가 등장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친동생들에게 거짓말을 한 내용이다. 이스라엘의 3대 명절인 초막절을 맞이하여 자신의 친동생들에게 분명히 ‘이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8절) 그리고 동생들이 올라간 후에 바로 은밀히 혼자 올라가신 것이다. 참으로 신자들이 시험에 들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종종 이렇게 하셨었다. 가나 혼인 잔치 때도 포도주를 요구하는 마리아에게 ‘이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씀하시고는 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제공했다. 왜 예수님은 이러시는 것일까. 이것은 예수님의 때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만 한다.

● 때에 대한 이해

가나 혼인 잔치와 이번 초막절 건 둘 다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두 경우 다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신 것과 누군가의 요청을 안 들어줄 것처럼 말했다가 후에는 실제 요청대로 행하셨다는 것이다. 포도주도 만들었고, 예루살렘도 올라갔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볼 때에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은 그 요청의 성취 여부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일을 자극적인 상황으로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때, 즉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비하신 그 때에 대한 이해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럼, 그들이 생각하는 때와 예수님의 때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 때의 차이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갖고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하여 복음전파 혹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큰 형 예수를 향한 조소와 반감이었다.

당시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다.(5절) 그렇기에 예수님에게 유명해지려면 이런 촌구석 갈릴리에 있지 말고 중앙 집권자들이 모여 사는 유대로 가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예수가 가진 초자연적인 능력이면 그곳에서 충분히 유명해져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 형제들은 ‘이 때’가 기적을 동원하여 세상의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때’는 달랐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실 그 때’이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들을 구원하는 그 때를 의미했다. 이것을 형제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 형제들은 후에 예수님이 말한 그 때를 명확히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바울과 바나바가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이방인을 전도했다. 이를 두고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왜냐하면,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 때 예루살렘 공의회원 중 한 사람이 일어나 ‘이방인이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것을 막지 말자’고 말했다. 이것이 받아 들여져서 이방인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 공식 선포된다. 이 때 발언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 누가는 이 사람이 야고보였었다고 말한다.(행15:13) 바로 이전에 예수님을 비웃었던 그 형제 중 한 사람이다.

이전에 야고보는 예수님의 표적을 자기 증명을 위한 도구로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그 표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싸인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기적이 나타났을 때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 야고보의 공의회 선언은 절대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야고보의 다짐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시 형제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의 때와 예수님의 때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이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오르면서 은밀히 오르신 것이다. 아직 성경에 이루어야 할 예언과 행해야 할 사역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예수님은 이 초막절 이후 6개월이 지난 다음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신다. 그 때를 위하여 이번 초막절에는 은밀히 행차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때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그것은 어찌하였던 간에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셨고, 거짓말을 죄가 분명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 거짓말에 대한 이해

원론적인 얘기를 해 본다. 성경의 죄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개념과 다르다. 성경의 죄(헬.하마르티아)는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과녁을 향해 가다가 벗어난 것이 죄다.

이런 의미로 봤을 때에 당시 형제들이 하나님의 때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면, 그들로 하여금 잘못된 하나님의 뜻을 심어주게 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안 올라가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이라는 과녁을 향한 일이었기에 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가능한 윤리적인 죄를 짓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하마르티아라는 성경의 죄의 개념이 합리와 위선이라는 이름의 죄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월절은 이집트를 탈출한 것을 기념하여 드리는 절기이다. 구원의 시작을 의미하며 앞으로 겪어야 할 광야의 고난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드리는 절기다. 반면에 초막절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과거를 돌아보며 드리는 절기다. 하나님이 광야에 함께 하셨음을 상기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오르신 이유는 우리를 그 약속하신 곳까지 이끌고 가신다는 약속의 상징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끌고 목적하신 곳에 이끄신다는 확신의 삶이 신자의 삶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성경을 읽다가 시험에 들었던 적이 있는가. 어떻게 해결을 했는가.

3. 하나님이 내게 행한 일들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 일이 내게 준 결과는?

4.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때와 내 때가 가장 달랐던 경우가 언제였는가.

5.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 사이에 갈등을 해 본 경험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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