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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2023. 요한복음 강해(5): 부르심. 요1:35~51절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제일 처음에 한 사역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일이었다. 본문은 12명의 제자 중에 5명의 제자인 요한, 안드레, 베드로, 빌립 그리고 나다나엘을 부르시는 모습이다. 이 다섯 명을 부르신 그 유형은 제 각기 다르다. 그 유형은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설교자의 가르침’은 안드레이다. ‘가족의 전도’는 베드로이며, 예수님이 ‘직접 부르신 경우’는 빌립이다. 그리고 나다나엘은 ‘지인의 전도’를 통해서 부름을 받았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시는 방법은 획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부르고 계신다.

우리는 이러한 부르심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바른 말씀을 전하는 지도자의 필요 :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라고 말을 했고, 이를 들은 두 제자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믿고 그를 따라갔다. 지금 이 상황은 우리에게 지극히 정상이고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생뚱맞은 경우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어린 양’이 영혼의 구원자라는 개념이 없었다.

당시의 어린 양은 그저 내가 제사를 지낼 때에 내 죄를 대신 뒤집어씌우고 나를 대신해서 죽이는 제사 의식은 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 양이 나중에 내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실 분의 예표라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내 죄를 구속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 현재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구원해서 실제적인 다윗의 왕국을 재현하실 분이 메시야였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이사야가 말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사52:6)는 말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 대속의 죽음, 희생의 제사가 나의 죄를 영원히 사하게 해 준다는 의미는 나중에 바울, 베드로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가 잘 설명하고 풀어 주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 그 시대 사람들은 그런 인식 자체가 없었다.(롬3:24,25. 히9:12, 벧전 1:19)

심지어 속죄제의 짐승의 피는 꼭 어린 양의 피만이 아니었다. 염소와 송아지 그리고 비둘기였고 너무 가난하면 고운 곡식 가루로 대신했다. (레위기 4장과 5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 요한이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니까 그들이 단번에, 그가 메시야인 것을 알아차렸다.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침례 요한이 평소에 구약의 모든 내용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그림자로 자신의 제자들에게 줄기차게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 중요하다. 당시의 사람들이 구약의 모든 내용을 알고 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메시야가 왔는데 못 알아 봤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구약의 인물, 사건과 제사가 메시야를 가리키는 예표인 것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 현실과 다르지 않다. 현대의 많은 교회들이 구약을 단지 우리 신자들이 살아가야 할 신자의 모범과 신자가 살아야 할 삶의 기준으로만 가르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다윗처럼 신실하게 살고자 하고,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담대한 믿음을 갖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들이 성경에 있는 것은 그것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이다. 예수님이 이러한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구약을 통해서 발견해야 할 것은 신자의 삶의 규범이 아니다. 그 위인들과 이야기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을 제외하고 단지 구약을 일반적인 신자의 교훈으로만 삼는다면, 당시의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못 알아 봤듯이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을 할 때에 우리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못 알아보게 될 것이다.

2. 우리의 반응 - 따름 : 본문의 내용 중에 반복되어 나오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와서 보라(2번)’와 ‘따르다(4번)’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의 완성은 따라감에 있다. 예수님이 아무리 부를지라도 따라가지 않으면 그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우리의 인생에 변화도 없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의 부르심의 길에는 엄청난 고난과 고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게 하시는 훈련으로 꼭 그 방법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각은 항상, 그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그 길을 따라가면 순교와 고행 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모두 다 순교를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신자의 삶에 대한 방향성을 보여 준 것이다. 이것은 신자 모두가 다 순교하고 목숨을 내 놓으라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버리고, 고통을 참아야 하는 비장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방향성이다. 그 분이 제시한 그 방향으로 걸어감을 의미한다.

얼만큼 가는지는 주어진 성향과 기질에 따라 다 다르다. 양이 중요하지 않다. 어느쪽으로 가고 있느냐가 얼마나 가느냐 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가기 위하여 오늘 밤에 자면서 몸부림치며 힘을 달라고 할 필요도 없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가슴을 치며 참으라는 말도 아니다. 그저 방향이다.

이것은 나이도, 학력도, 기술도, 재력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주의 나라를 위하여 내가 필요한 그 무엇 하나가 있다면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잘할 필요도 없다. 조금 게을러도 되고 심지어 망쳐도 된다. 그냥 단지 이제 나만을 위한 삶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삶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 방향 전환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방향을 바꾸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인자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한다.(51절) 이것은 야곱이 벧엘에서 돌 베게 베고 잘 때에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 위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본 것과 아주 유사하다.(창28:12)

이 사다리는 하나님이 야곱에게 올라오라고 준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내려오겠다는 것이다. 내려 오셔서 너와 함께 있어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창28:15) 그렇다. 그것이 주님의 부름에 따라가는 자들에게 준비된 복이요. 주의 다함없는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인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난 부름의 4가지 유형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가.

3. 베드로가 처음 부르심에 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가.

4. 내가 제일 쉽게 방향을 바뀔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5. '제자의 길'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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