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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2024  요한복음 강해(43). 세상의 선택. 요18:28~40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최소 5번의 심문과 재판을 받으셨다. 이 때 예수님을 심문한 사람은 안나스, 가야바, 헤롯 그리고 빌라도이다. 이렇게 많은 재판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죄가 없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이들의 사형 판결과 집행권은 로마 총독 밖에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31절) 이런 이유로 빌라도에게 사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 법정 상황의 이해

일반적으로 법정은 재판관, 죄인 그리고 고소인이 한 자리에 있다. 하지만 당시 법정의 상황은 빌라도와 예수 만 법정에 있고 유대인들은 밖에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빌라도는 관저 안과 밖을 계속해서 드나들면서 재판을 이어갔다. 왜 이렇게 진행을 했는가.

     

그것은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해진다고 생각했다. 그 부정함을 없애려면 만 하루가 지난 후에 옷을 빨아서 입으면 정결해진다고 믿었다. 그런데 유월절이 12시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이방인 총독의 법정에 안 들어간 것이다.

     

이 모습은 엄청난 종교적 모순을 보여 준다. 먼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해진다는 것은 율법에 없는 내용이다. 후대에 랍비들이 정한 규례이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더 깨끗하고 순결한 백성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에도 없는 것을 추가하며 하나님 앞에 정결하려 애를 썼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가장 고결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왔는데 못 알아볼 뿐 만 아니라, 그를 자신들이 세워놓은 가정 더럽다 여기는 곳에 그를 두었다. 그리고는 자신은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아이러니다.

     

이 태도는 오늘 우리에게도 존재한다.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녀라는 근거를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과 태도가 아닌, 자신이 세운 기준을 근거로 판단한다. 누군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서 복을 받은 자로 보이는 자가 등장하면, 자신은 계명에도 없는 무언가 더 대단한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추가하여 지켜 나간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 가는 상관이 없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누구 보다 더 희생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독교 신앙은 율법을 지키는 싸움이 아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 주일을 성수를 하는 가 그렇지 않은가, 십일조를 하는 가 그렇지 않은가의 싸움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내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가의 싸움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사랑이 없는 가운데 행하는 그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행하는 모든 신앙적 행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주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담은 진심이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해석한 율법을 기준으로 정의를 세우려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었다. 인간이 세우는 의는 옳은 일로 가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남을 정죄하며 자신의 의를 세우는 것으로 모아진다.


기독교 신앙은 옳고 그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은혜의 경지에 가야 한다. 우리를 채우는 그 은혜가 흘러서 우리를 통하여 세상이 ‘하나님의 참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저주를 축복으로 행하는 것이 기독교요,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십자가 모범이다.

     

● 바라바를 택한 이유

바라바가 감옥에 갇힌 이유는 민란을 일으켜서이다.(눅23:19) 당시의 민란은 정치적 폭동을 의미한다. 당시 유대땅에는 잦은 민란이 있었다. 사도신경의 드다, 유다, 사천명을 이끌고 광야에서 모의를 하던 자 뿐 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마카비 혁명 역시 그러하다. 이 모두가 다 민중을 소란케 한 민란이었고, 이러한 민란이 있을 때마다 유대인들은 그 리더를 메시야로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바라바가 ‘민란’으로 감옥에 갔다는 것은 그가 ‘독립 운동가’였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아닌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에는 예수님이 메이야였었다. 로마로부터 독립을 해 줄 사람으로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혀 민중을 봉기할 생각이 없는 가짜인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민란을 일으켰던 바라바를 풀어주는 것을 요구했다. 그는 진짜라 생각했다.

     

이것이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잘못되어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태도이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판단한다.

     

빌라도는 이 재판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예수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인데, 왜 유대인들이 감옥에 넣으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납득이 되지 않아서 예수에게 직접 물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33절) 그 때 예수님이 대답이 더욱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예수님은 ‘왕은 왕인데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러 왔다’고 했다.(36절)

     

이 때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아주 유명한 질문을 한다. 그것은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것이다.(38절) 이 질문을 의역하면 ‘진리가 밥 먹여주냐’라는 조롱이다. 그렇기에 그는 예수께 답도 듣지 않고 나가버렸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당면한 현실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묻는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과연 예수를 믿어서 얻게 되는 현실의 유익과 실리는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 세상의 것의 소유를 자랑한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취하든지, 세상은 그것을 조롱하듯이 더 강한 것으로 나를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진리는 세상의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절대의 진리가 비록 우리의 삶이 여전히 곤고할지라도, 내 안에 넘쳐나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려는 마음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복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인가.

3. 내가 주장하는 옳은 것으로 상대를 피폐하게 만든 일이 있었는가. 아니면 그렇게 당한 적이 있는가

4. 당신이 당시의 유대인이었다면 예수와 바라바 중 누구를 택했을 것 같은가. 왜 그러한가.

5. ‘진리가 밥 먹여주냐’는 불신자의 질문 앞에 나는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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