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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024 요한복음 강해(40). 예수님의 기도(3): 신자들. 요17:20~26절

본문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믿게 될 신자들(성도들)을 위하여 하신 기도이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는가. 그것은 ‘제자들의 말(word or message)’을 통해서이다.(20절) 이것은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를 아주 잘 말해주고 있다.


교회가 숫자적 부흥을 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적과 능력이 매주 예배 때에 나타나면 확실히 부흥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것이 아닌 ‘그들의 메시지’를 통하여 믿는 자가 생기게 됨을 기도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갖는 이유는 내 삶 속에 일어나는 어떤 능력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목적이 있다.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 능력과 기적이 아니기에, 신앙을 전하는 방법도 그런 것이 동원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목적은 기적이 아닌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누군가와 교제가 시작되면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대화를 통해서이다. 그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도의 방법이요, 목표요, 방향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말씀을 통하여 믿게 되는 신자들의 삶 속에 이루게 될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 하나 됨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궁극적으로 이루려고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 됨’이다. 하나님과 성도와의 하나 됨 그리고 성도들 사이에서의 하나 됨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같은 품성과 영광과 거룩에 온전히 참여하게 됨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거룩의 수준에 맞는 자로 우리를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다.

이 하나 됨은 예수를 믿는 순간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일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 과정 속에 상상 이상의 어려움이 발생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변화는 예수를 믿는 순간에 동시에 발생한다. 그리고 그 신분은 나의 부족함에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요구하는 신자의 수준은 절대로 그냥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빚어진다.

     

바울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과정을 건축으로 묘사했다. 신자의 인생은 예수와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것이라고 했다.(엡2:20~22) 그렇기에 예수를 믿게 되면, 믿기 전보다 훨씬 더 힘들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성전이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갉아내고, 잘라내고, 짜 맞추느라 짓누르고 하는 일이 신자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경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씀을 통하여 그 분이 어떤 분인가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와의 관계 속에서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고 나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신 목적과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

     

기독교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주된 핵심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의 내용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성경은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책과 다르다. 교훈과 도를 깨닫는 내용이 아니라, 몽땅 다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성경의 첫 시작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고, 마지막은 하나님이 이 역사를 어떻게 끝낼 것인지를 말한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인격과 성품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어떤 목표와 의지를 갖고 계시며, 자신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에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최고의 핵심의 대상은 ‘나’이다.


이 믿음이 있다면 내가 지금 실패했을 지라도 내 운명이 이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또한 이것을 통하여 내게 계획된 또 다른 스테이지가 열리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 된 신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 영광으로의 초대

영광(독사)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늘나라의 속성이 가시적으로 계시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다’고 기도하셨다.(22절) 이 말은 곧,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드러내는 일에 우리가 초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영광이라고 하면 화려함과 영예를 떠올린다. 하지만 구약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은 ‘두려움’이었다.(신5:25) 그래서 성막도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데, 그 위에 구름이 덮여있었다.(출40:34) 구름이 영광을 가렸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이 개념이 달라졌다. 요한은 그 하나님의 빛이 우리를 찾아오셨다고 한다.(요1:4.5) 하나님이 빛으로 드러내시고, 그 안에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그 일을 예수님이 행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으셔서 어둠을 몰아내고, 참된 하나님의 화려한 영광의 빛을 드러내셨다. 그 영광을 이제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주셨다는 선언이다.(22절)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은 두려움이 아니다. 기쁨이고, 환희이며, 절망 속에 피어난 화려한 소망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 ‘내게(예수님)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내 신앙을 점검하는 기준이 하나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인식하면, 여전히 구약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빛 되신 주님, 내게 영광을 심어주신 주님이라면 신약을 살고 있는 성도이다.

     

신자는 이 영광의 자리에 초대된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로 묶으셨음을 기억하고, 신자라는 신분이 가진 큰 축복의 자리를 확인할 때에 기독교 신앙이 주는 참복을 누리는 자가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성경을 읽는 것에 대한 유익은 무엇인가.

3.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이 사귐이 멈춰있다면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4. 성경을 읽으며 이전에 몰랐던 하나님에 대한 것을 알게 된 것이 있는가. 나누어 보라

5. 나는 하나님을 떠올리면 두려운가, 아니면, 사랑을 느끼는가. 왜 그러한가 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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