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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024. 요한복음 강해(36)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 요16:1~13절

교회 안에서 신앙의 성장을 방해할 뿐 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오염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잘못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식이 잘못된 상태로 파생된 신앙이 굳어지면 본인이 잘못된 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변에 함께한 성도들의 신앙도 망가뜨린다. 성경에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 그것은 바울이다.

     

● 성경의 대표적 인물:바울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 혹자는 이 상황을 바울의 회심이라고 말을 한다. 아니다. 사실 그는 회심한 적이 없다. 그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사랑은 늘 한결같았다. 다만 방법과 방향이 잘못되었었다. 이전에는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겼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바뀐 것이다.

     

그는 당시에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이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 낳은 아주 참람한 상황이었다.


후에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깨달은 후에, 여전히 자신처럼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려는 자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전하며 그들을 돌이키기에 애를 썼다.(롬10:2) 그렇다. 신앙은 열심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바른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다.

     

예수님은 곧 있으면 유대인들이 제자들을 출교하고 죽이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일을 행하는 자들이 생각하기를, 신자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여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2절) 그렇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낳은 엄청난 문제이다.

     

이 예수님의 경고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다. 복음과 전혀 상관없는 메시지가 강단에서 선포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똑같은 성경을 읽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헌신과 열심을 부추킨다. 하나님은 내가 무언가를 내 놓으면 그에 비례하여 합당한 대가를 주신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복음이 아니다. 만일 누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신앙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왜 이러한 잘못된 열심이 생기는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잘못된 신앙의 열심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한다. 반면에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은 바른 믿음과 바른 신앙생활을 낳는다. 우리가 가진 대표적인 오해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와 형편과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 성경 인물들의 예

이것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야곱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서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너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다’(창28:5) 그 때의 야곱은 믿음이 건실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을 가던 길 중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시고, 그들의 인생을 끝까지 추적하셔서 그들을 회개케 하신다. 그리고 그가 한 모든 약속을 이루신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하나님은 죄 중에 있는 나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분이시다.(롬8:22) 우리가 벼랑 끝에서 외치는 처절한 비명을 외면치 않으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놓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신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는 자이다.

     

● 잘못된 하나님의 지식: 성령

성령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성령을 마치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어떤 물질 혹은 에너지로 여기는 경우이다. 그렇지 않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지, 정, 의를 가지신 인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부, 성자 하나님을 떠올리면 나를 감싸 안아주시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성령님은 그렇지 않다. 바람처럼, 기운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분이시다.(롬8:26)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을 말씀하심으로 성령님이 인격임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성령님은 세상을 향하여는 책망하시고, 신자를 향하여는 보혜사이신 분이라 하셨다.(7,8절) 보혜사는 변호자, 위로자, 상담자라는 의미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심판하실 때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감싸 안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변호하신다는 뜻이다. 즉, 그 분은 하나의 에너지가 아니라 인격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성령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인식은 다르다.

     

오늘 날 우리 기독교가 힘을 잃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을 기초로 우리의 신앙을 쌓지 않는다. 내 느낌, 내 상식, 내가 그리고 있는 이미지에 열심을 더한다. 그리고 이 충성과 열정이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내가 걸어가는 신앙의 길이 과연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방향인지를 말씀을 통하여 꾸준히 점검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계속 할 때에 우리의 인생을 홀로 두지 않으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으로 오신 성령, 그 성령 하나님을 인격으로 만나게 될 것이고, 삶의 순간 마다 그 분의 인도를 느끼게 될 것이다.(13절)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신앙의 잘못된 방향을 교정한 적이 있는가. 잘못된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3. 내게 있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가. 두려운 하나님인가. 왜 그런 인식이 들게 되었는가.

4. 나는 내가 가는 신앙의 방향의 옳고 그름을 무엇을 통하여 확인하는가.

5. 내게 있어 성령 하나님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왜 그렇게 생각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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