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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022. 호세아서 강해(5): 돌아가리라 그 품으로. 호5:5~6:3절

Updated: Dec 12, 2022

본문은 호세아의 9편의 설교 중 두 번째 설교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교만이 큰 원인이라고 하신다.

● 교만이란?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성경에서 말하는 단어의 정의와 우리가 이해하는 단어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죄’이다. 성경의 죄는 도덕적, 윤리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해 가던 길을 벗어나는 것이 죄이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감동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죽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은혜는 부족한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도 아니고, 내가 주님께 한 일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받은 절대 은혜는 죄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자를 하나님이 살려주셨기 때문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내가 구원을 받았다라는 감격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없으면 십자가의 은혜가 아직 잘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무서운 심판을 전제로 한다. 그 심판에 놓여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내가 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 그것을 인정하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자이다. 이것을 아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있다. 그것은 불신자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다. 전도를 할 때에 예수 믿으면 형통한 삶을 산다는 얘기에는 힘이 있으나, 죄, 심판, 죄사함을 말할 때에 자신이 없다면 내가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죄사함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죄의 정의가 일반적인 것과 다르듯이 교만의 정의 역시 다르다. 일반적인 교만과 겸손은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개념’이다. 반면에 성경의 교만과 겸손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나의 태도’이다. 성경적 정의로 비추어 보면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에게 ‘나 그것 가졌어’라고 하는 것이 교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분명히 내가 가진 것인데 ‘전 그렇지 않아요’라고 없는 듯이 하는 것도 겸손이 아니다.

성경적 교만과 겸손은 내가 지금 가진 것, 누리는 것,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태도이다. 교만은 내가 가진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인지 없이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이고, 겸손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인정하고 아는 것이 겸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만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의 의미는 그들이 잘난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그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와 부유함이 자신들이 이루어낸 줄 알거나, 자신들이 바알신에게 무언가를 해서 받은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무언가를 해서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죄가 전이가 된다.

● 교만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 : 죄의 전이(transmission of sin)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에브라임(북 이스라엘의 다른 표현)과 남 유다가 함께 넘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5절) 죄가 자연스럽게 남유다에게 전이가 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만일 교만을 세상적인 교만으로 이해하여 교만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면 이런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은 잘난 척하지 않고, 건방 떨지 않고,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섬기게 된다.

참 좋은 모습이다. 모두에게 권할 만한 태도이다. 하지만 참 복음이 내 안에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행하면 실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자의 삶이 아닌 도덕경에서 말하는 자애로운 인간이 되어 간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품격과 교양과 인간성에 매료가 된다. 이로 인해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신자의 삶의 기준이 된다.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전이가 된다. 너무나 보기 좋고 훌륭한데 그 안에 복음은 없다.

진짜 신자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안다. 이 사실이 분명하면 자연스럽게 내 모습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진다.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 그것이 신자가 걸어가야 하는 마땅한 길이다.


그럼, 이제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삶을 살려면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이제 혼동이 있다. 낮아지고, 남을 섬기는 삶일 지라도 하나님이 아닌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죄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고,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신다’(2절)고 하셨다. 무슨 뜻인가.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의미한다. 예수님게서 죽으시고 셋째 날에 사망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돌아가야 할 하나님의 품이라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을 갖고 사는 삶이다. 우리의 모든 죄가 부서지고 십자가로 온전해 지는 그것을 믿는 삶. 그것 하나로 우리의 모든 것이 회복되고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자꾸 엉뚱한 길로 가려고 한다. “예배를 빠지지 않겠다. 성경을 보겠다. 기도를 열심히 하겠다. 헌금을 많이 드리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모습, 그 영광을 드러낼 수가 없다. 그러나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주께서 내 죄 때문에 모든 고통을 감내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결국에는 셋째 날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바로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일하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좁은 길이다.

더 이상 내가 하나님께 뭘 해서 영광 돌리려고 하지 말라. 그것 역시 교만이다. 그저 단순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분을 묵상하라. 그럴 때에 우리 안에 말하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흘러넘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봉사, 사역, 헌금 혹은 섬김이든 그 어떤 것도 좋다. 그것을 행하면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돌아와 참된 신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인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3.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는가. 어떤 상황으로 그려지는가.

4. 나는 불신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5.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은 누구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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