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무엇인가. 그 평안은 무엇을 통하여 누릴 수 있는가. 먼저, 우리가 원하는 평안에 대하여 알아본다.
● 우리가 원하는 평안
당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바로 예루살렘 입성을 코 앞에 두고 예수님께서 자꾸 어디로 간다고 하기에 제자들이 당황하는 것이다.
신자의 오해는 여기서 비롯된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할 또 다른 나라가 있다. 그런데 하늘에서 약속 받은 내용을 이 땅에서 취하려고 할 때에 우리의 평안이 깨진다.
본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땅은 완벽한 땅이었다. 이 땅 자체가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에덴동산이라고 명명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곳’이었다. 언제인가.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에덴동산이 그러했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인하여 이 땅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곳이 되었다.(창3:17) 그로 인하여 이 땅은 인간이 노력하고, 애를 써야 살 수 있는 땅이 되었다. 죄의 결과이다.
그럼 이런 질문이 생긴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 그럼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저주 받은 이 땅을 이전의 에덴동산처럼 회복하실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안 하시냐는 것이다. 정답은, 하나님이 이미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거처를 예비하셨다’는 말이다.(요14:2)
여기에 한 문제가 있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한 분이시지만, 우리는 현재 시공간에 지배를 받고, 영향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거처로 가려면 시간이라는 차원을 지나야 우리가 그곳에 있게 될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이미 모든 것을 마련했다. 준비된 것이다.
그럼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이 이 땅이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을 신자에게 준비하셨다면, 왜 이 피폐한 땅에 여전히 두고 계시냐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에녹과 엘리야처럼 승천이라는 방법으로 직접 그곳으로 데려가면 되는데 왜 여전히 이 땅에 두고 계시는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이 땅을 아담 때처럼 돌려놓으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생긴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신자의 경험을 두고 보면 유추할 수 있는 답이 있다. 그것은 신자는 이 땅의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인생이 내 맘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것이 죄로 인한 결과임을 발견한다. 그러한 일련의 경험들을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 맞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이 땅에 두시는 이유이며,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신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내가 지금 사는 이곳의 환경과 상황이 개선되고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바람을 거두어야 한다. 신자가 된 이후에, 신자이기 때문에 내게 놓여진 모든 것이 더 편안해지고 호전될 것이라는 것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하나님이 나의 요구와 소원을 이루어 주실 때도 있다. 하지만 성경의 기본 원리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요구하는 것, 약속하신 것은 이 세상의 물질과 이 세상의 명예와 이익이 아니다. 그 분의 약속은 하나됨이다. 하나님과 나, 예수님과 나, 성령님과 나의 하나됨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20절)을 의미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주님이 약속하신 것을 세상의 것으로 이해한다. 이로 인하여 세상에서의 필요한 것을 그 분의 초월적 능력으로 해결 받으려고 한다. 이것에 묶여 있기에 내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시는 것으로 여겨서 오늘 이 땅에서의 평화가 없는 것이다. 그럼, 이 땅을 사는 신자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무엇인가.
●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예수님은 ‘너희를 고아와 같이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18절) 그 성령님은 예수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평안을 느끼지 못한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내 기준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우리의 기대와 다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기 때문이다.(27절) 약속하신 성령은 오셔서, 우리의 소원과 바람을 충족하는 것으로 평안을 주지 않는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주시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예수님의 말씀, 그 내용, 그 가르침을 생각나게 함으로 우리에게 평안은 주시겠다고 하셨다.(26절)
그렇기에 기도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세상적인 자랑을 근거로 평안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참 평안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약속한 평강은 분명히 먹고 마시는 세상적인 것이 아님을 곳곳에서 말하고 있다.(롬14:17)
내가 생각하는 평안으로 하나님께 구하여 세상의 것으로 평안을 누리려는 마음을 접어야 한다. 그 때에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주님이 해 주신 약속으로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실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이 방향, 이 안목을 갖기 시작할 때에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이 길에 초대 받은 인생임을 깨닫고 믿음의 길을 걸을 때에 우리 인생의 마지막 끝까지 인도하시는 그 분의 손을 잡고 예비된 거처로 가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 인생에 가장 평안했던 때는 언제인가.
3. 인생의 어려운 시기에 만났던 하나님이 내게 주신 평안이 있었다면 어떤 경우였는가.
4. 내가 지금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평안이 올 것으로 생각되는가.
5.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에 위로가 되었던 말씀이 있다면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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