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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2023. 요한복음 강해(32) 나를 믿으라. 요14:1~17절

Updated: Dec 14, 2023

유월절 만찬의 자리가 끝난 후 예수님은 심령이 괴로워하시며 제자들 중 하나가 배신을 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디를 가실 것이라며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 하셨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근심했다. 그 모습을 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하셨다.(1절)


그럼, 뭘 믿으라는 것인가. 많은 경우에 이 때의 믿음은 이런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기도가 다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의심도 하지 않았고, 정욕으로 구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안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를 믿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가 내가 현재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님이 우리의 기대대로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예수님은 뭘 믿으라고 하신 것인가.


그것은 내 소원을 이루어줄 것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이 내 인생을 끝까지 붙들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확실하게 책임지실 것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우리 신자가 갖고 있는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신자, 믿는 자’가 뭔지 잘 모르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신자의 길, 성숙, 목적이 이것인 줄 알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려 왔는데 성경의 말하는 신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덩지는 커졌는데 힘이 없다.

예수를 믿는 신앙의 싸움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 보이는 것, 우리가 감각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 그 끝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 있다고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그것이 믿는 자의 길이다.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다.(2절) 그 거처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 것인가.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미 그 거처가 천국을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제자들은 그것이 죽음을 의미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 뿐 아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는 많은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혼동스럽까지 했다. 왜 이런 일을 발생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속한 ‘차원’에 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3차원까지 인지가 가능하다. 차원을 정리하면 점(0차원), 선(1차원), 면(2차원), 공간(3차원)이다. 3차원에 시간의 축을 더한 것이 4차원이다. 차원이 가진 특징이 있다. 각 차원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상위 차원에서 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각 차원 안에 거하는 존재는 자신이 처한 차원에 대한 이해를 결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상위 차원에서 만이 하위 차원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인간은 3차원에 거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볼 수는 없지만 시간을 더한 4차원에 우리가 있다는 것이다. 즉, 공간(길이, 넓이, 부피)에 시간이라는 축이 추가된 것이 4차원의 시공간 세상이다. 이 개념을 3차원의 존재인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은 모든 차원에서 존재한다. 각 차원의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면 바로 상위차원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속한 3차원에서 우리가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것처럼, 4차원의 존재는 3차원의 시간의 흐름에 구애 받지 않고 각 시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4차원의 존재가 3차원의 세상을 바라볼 때에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부피가 포함된 3차원의 관점에서 모든 면을 한 번에 관찰 가능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사위의 모든 면을 동시에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적어도 한번을 돌려야 한다. 즉,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 하지만 4차원의 존재는 3차원의 시선으로 한 번에 인식이 가능해진다.

쉬운 표현으로 비유해 본다. 3차원에 사는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없다. 오직 현재만 가능하다. 하지만 상위 차원의 존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상위 차원의 존재는 하위 차원에 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상이 아니라 과학이다. 하나님이 시공간을 초월해 계신다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


지금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가진 안타까움이다. 예수님은 차원 밖에 계신 분이다. 그렇기에 이미 제자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 눈에 보고 계신다. 그래서 그들에게 설명을 하는데 설명할 방법이 없고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3차원에 있는 이들의 인식 밖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들이 처하게 될 미래를 그들이 인식 가능한 장소의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했던 ‘거처를 예비한다’는 말은 그 거처가 아름답다는 말이 아니다. 그가 전하고 싶은 것은 ‘내가 다 너희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난 너희를 향한 계획이 있다. 그러니 근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거처를 예비한다’는 것이다.(2절)

예수님은 무엇을 구하든지 행할 것을 약속하셨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내 이름으로’이다. 이는 ‘그 분의 이름에 걸맞게 혹은 합하게’라는 뜻이다. 우리의 기도는 소원을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리요, 그 분의 음성과 능력을 입는 시간이다. 우리가 그 기도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면, 그 기도와 간구로 모든 것을 이루는 신자가 될 것이다.

※ 차원에 관한 설교 내용은 지난 주 설교 ‘나를 믿으라’의 25분 30초 이후를 들으시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기도를 했는데 안 이루어지는 경우에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

3.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 이상하게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가.

4. 차원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에 하나님이 시공간을 초월해 계신다는 것을 이해했는가. 설명해보라.

5.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와 내 기도의 큰 차이는 무엇인가. 이제 어떻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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