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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2022. 추수감사주일: 감사의 이유. 슥2:6~13절

Updated: Nov 22, 2022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며 감사해야 할 이유들을 배운다. 또한 감사하면 삶이 회복하고, 기적이 일어나며 심지어 감사하면 육체의 질병도 온전해 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얘기를 접할 때마다 우리 안에 딜레마가 생긴다. 이 모든 것을 잘 알지만 감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동원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내게 현재 있는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찾으면 감사할 거리가 생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남도 가졌고 남이 가진 것이 내 것 보다 더 좋으면, 내 자신이 초라해지고 불평만 남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감사를 할 수 있는가. 어떻게,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참 감사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단 한 가지이다. 참된 감사는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그 순간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면, 내가 억지로 만들어 낸 감사가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감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를 하려면 어떤 것을 알아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 볼 때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아직도 여전히 북방 땅(앗수르와 바벨론)에 남아 있는 자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한다.(6절) 이들이 그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익숙함 때문이다. 이미 포로로 잡혀 들어 간지 70년이 지났다. 이로 인해 그곳에 있는 자들은 이미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그들의 고향은 예루살렘이 아니다. 바벨론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에게 바벨론을 떠나라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이다.

왜 하나님은 떠나라고 하시는가. 그것은 그들이 지금 바벨론에 있게 된 것이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6절)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당히 혼란을 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신이라면 외적으로부터의 침략을 막아주던지, 침략이 있더라도 승리케 해야 믿음이 간다. 그런데 70년의 시간을 고생을 시키고 이제 와서 그것은 내가 벌인 일이니 그곳에서 나오라고 하면 믿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왜 이런 방법으로 일을 하시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가’를 알면 이해가 된다. 우리의 대부분은 고난을 하나님의 테스트로 이해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테스트를 통과하면 준비한 복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복을 받기 위하여 이 테스트를 반드시 이기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이렇게 테스트로 이해하면 평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련을 해야 한다. 훈련을 해야 한다. 준비된 자는 역경을 이길 수 있기에 맹훈련을 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렇게도 일을 하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고난은, 고난 그 자체가 바로 훈련의 차원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러니까 평소에 훈련이 잘 되었는가를 테스트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더욱 단단한 인생으로 빚어가기 위한 훈련의 차원으로 우리에게 고난을 의도적으로 밀어 넣으신다. 성경의 대표적인 사례는 요셉이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팔려 옥살이를 한다. 그는 그곳에서 비전을 품고 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하루 하루를 버틴다. 훈련된 자이기에 꿈을 품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루 하루를 견딘다. 이 부분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하나님이 보내셨다. 그가 종으로 팔렸다. 그의 발에는 차꼬를 찼다. 몸은 쇠사슬로 매였다.(시105:17~19)

이 모두가 다 수동태이다. 그가 의지를 가지고 이것을 버틴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지금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확증이 있다. 그것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시편 기자는 ‘말씀이 그를 단련했다’(시105:19)라고 말한다. 이 모든 고난은 하나님이 그를 단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요셉의 인생에 주권적으로 심어 두었다는 것이다. 고난 자체가 그를 단련하기 위함이다.

이 고난을 지난 후에 요셉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사실 그는 본인이 달라진 것을 몰랐다. 언제 확인이 되는가. 형제들이 찾아와 그 앞에 무릎을 꿇을 때이다. 이 때야 비로소 하나님이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나 한 사람을 앞서 이곳에 보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형제들을 품고 용서할 수 있었다. 그제야 본인의 그릇이 커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고난을 만나면 그것을 이기기가 어려운 것이 맨날 똑같은 고난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그 고난을 이겨 내고, 또 다른 종류의 고난이 찾아오면 내가 무언가 어떤 프로그램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성장하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맨날 그 놈이 그 놈 같은 고난이 지속된다.

풀리지 않는 경제 사정은 1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육신이 아픈 것도 동일하게 똑같이 아프고, 속썩이는 남편은 도대체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언제나 나의 신앙 수준은 그 수준에 머문 것 같다고 한탄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장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일을 턱하고 대면하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이 일이 나를 얼마나 성숙케 했고, 나의 신앙을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를 말이다.

그럼 우리가 고난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울어야 한다.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며 비명을 질러야 한다. 절대로 울음을 참아서는 안 된다. 그래야 산다. 우는 것이 지는 것이 아니다. 울어야 이긴다. 그렇게 한참을 울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통치가 있음을 인식할 때에 우리는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감사를 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할 때

성경이 얘기하는 복은 현상적이고 물리적인 것 뿐만이 아니다. 예수를 믿고 받은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내 인생에 목적과 의도를 갖고 계심을 아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가장 큰 감사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 중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나를 통하여 무언가를 이루시기를 원하고, 이를 위하여 끊임없이 나를 만들어 가신다. 이것이 가장 큰 복이다.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말씀을 주셨다. 이는 우리의 생각하는 복과 다를 수 있다. 왜 하나님은 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그것은 현상적이고 물리적인 감사는 제한적이고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함께 한다는 것은 하나님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내가 기대하지 않은 결과가 내게 주어지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 때에 우리는 진정한 감사를 할 수 있게 된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고난이 훈련임을 알게 된 경우가 있는가. 어떤 경우였는가.

3. 고난을 통하여 내가 단단해진 것은 어떤 부분인가.

4. 내가 나를 봤을 때에 신자가 된 후에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무엇인가.

5. 현상적인 복과 하나님이 함께 하는 복을 택한다면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그 이유를 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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