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 또한 우리가 주 앞에 드려야 하는 감사가 무엇인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유월절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 유월절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 번째 드리는 유월절이다. 첫 번째는 이집트, 두 번째는 광야, 세 번째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자마자 드렸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여 제정된 날이다.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사건이나, 훌륭한 인물을 잊지 않기 위하여 행하는 것이다. 즉, 이미 지난 일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첫 번째 유월절은 아주 독특하다. 왜냐하면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탈출이 있기 전에 드렸다. 그러니까, 탈출하게 해 주셔서 감사로 드린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먼저 제사를 드렸다. 이들이 드린 감사의 제사는 내게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내게 큰 일을 행하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먼저 보고 올려 드린 감사이다.
두 번째 유월절은 출애굽한지 1년이 지나서 시내 광야에서 드렸다. 이 후로는 약 38년간 더 이상 광야에서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할례 받은 자만이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광야에서는 첫 유월절 이 후로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례를 행한 자’란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이제는 내 삶의 방향을 ‘주께서 명하신 법과 규례를 따르겠다고 그 마음에 정한 자’라는 의미이다.
세 번째 유월절은 가나안 땅에서 드린 유월절이다. 이 유월절을 드리기 위하여 여호수아는 할례 받지 않은 백성들을 위하여 할례를 먼저 행했다. 이 때의 유월절 역시 독특한 점이 있다. 유월절의 제사는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했다. 그런데 이들이 짐승을 먹었다는 얘기는 없고, 그 땅에서 나온 소산물로 무교병(빵)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는 얘기만 있다. 왜 그랬는가. 이에 대한 답은 ‘유월절 이튿날’에 먹었다는 것에 있다.(11절)
‘유월절 이튿날’은 ‘초실절’이다. 봄에 첫 수확을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이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초실절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것이다. 유월절은 가나안 땅에 도착한지 14일 만에 드렸고, 초실절은 그 다음 날인 15일째이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는 이 소산물들은 이들이 수고하여 거둔 결실들이 아니다. 이미 그 땅에 있던 것이다. 남이 수고한 것으로 이들이 감사절을 지키고, 자신들이 먹고 배부르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광야에서 하신 예언의 성취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네가 심지 아니한 것들을 차지하게 되어 배불리 먹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신6:11) 그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명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이 맹세한 땅에 이르렀다’라는 고백을 하라는 것이었다.(신26:3)
무엇을 의미하는가. 본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첫 감사절은 내가 무엇을 소유한 것으로 인한 감사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에 대한 감사였다. 광야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곳에서는 농산물로 제사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들이 농산물을 바쳤다는 것은 이제 광야가 아닌 농사할 수 있는 땅에 이르렀다는 뜻이고, 그 땅은 곧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그 땅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지금 그들이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이 이러한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들을 결코 버리지 않고, 그가 한 약속을 이들의 패악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루어 주셨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내가 현재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올리는 감사 역시 훌륭하다. 하지만 성숙한 신앙인의 감사는 현재 어떤 상황 속에 있던지 간에 나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다는 것을 믿기에 드리는 감사이다.
● 감사 제사 이후
이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유월절과 초실절을 하나님 앞에 드렸다. 그 직후,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들에게 매일 같이 하늘에서 내렸던, 이들의 일용할 양식인 만나가 끊긴 것이다. 이제는 이들이 더 이상 만나로 살지 않는다. 자기들이 수고하고 노력한 결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미리 감사하면 하나님이 좋은 것을 채워 주신다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감사 제사를 지내니까, 그 후에 만나를 끊으셨다. 말하자면 일상을 위해서는 더 이상 내게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은 기적으로 유지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노력, 성실, 근면, 충성으로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삶에서 가장 많이 기적이 일어날 때는 초신자 때이다. 이 때에는 별의 별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신다. 당신이 이 세상의 주권자이요, 전능자임을 확인시켜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가 지나면 하나님은 그 뒤로는 기적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 보여 주시는 은혜로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더 이상 그 만나의 기적이 필요 없는 비옥한 땅, 가나안 땅에 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무엇을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평안을 취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성령의 9가지 열매이다. 성령의 열매는 모두 다 능력이 아니다. 성품이다. 신자는 세월이 갈수록 성품을 통한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첫 번째 유월절은 미리 한 감사로 원하는 것을 손에 얻었다. 두 번째 유월절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신을 요구하고, 세 번째 유월절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지된 자는 소유한 것이 이유가 되어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우리를 약속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드렸던 감사이다. 우리의 신앙이 이러한 수준의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로 서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주로 하나님 앞에 드렸던 감사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3. 내가 수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에 거두게 된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4. 감사할 것 보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앞설 때에 내가 취하는 자세는 무엇인가.
5. 내 성품 적인 부분에서 변한 것이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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