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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2022. 산상수훈Ⅲ(7) 외식하지 말라. 마6:1~4절

유대인들에게 경건의 키워드를 꼽으라고 하면 ‘구제, 기도 그리고 금식’이다. 이것을 잘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기준 삼았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6장 1~18절에 걸쳐서 이 세 가지를 똑같은 한 패턴으로 풀어 설명하셨다.

그 패턴은 ‘외식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 은밀하게 하라,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렇게 4가지이다. 이 4가지 사항이 구제, 기도 그리고 금식에 동일하게 적용하여 주의를 주셨다. 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그 이유와 계기가 무엇인가.

● 예수님의 의도와 계기

본문에 등장하는 외식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휘포크리테스’다. 이 단어의 뜻은 ‘연극배우’다. 당시의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 사람들은 배우의 실제 모습은 어떤지 모른다. 단지 그 배우가 맡은 대사와 역할을 보고 그것이 그 사람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외식이다. 그 연기에 가려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런 예수님이 다른 죄에 관하여는 그다지 큰 비판 없이 넘어가셨다. 하지만 외식에 관하여는 달랐다. 마태복음 23장 거의 전장에 걸쳐서 대노하셨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자들아,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엄중한 심판은 받으리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는 모든 욕들이 다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신 욕이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에게 회칠한 무덤 같다(마23:27)고 하셨다.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썩어있음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왜 외식하는 자들에게는 특별히 강하게 몰아치는 말씀을 하셨는가. 그것은 외식하는 자는 예수를 믿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다. 즉, 속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겉은 온화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요, 속은 질투와 시기가 가득한데 사랑의 사도로 보일 만큼 정이 가득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고 추앙한다. 이것에 익숙해지면 스스로 나는 훌륭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에 대하여 성경은 정확히 이렇게 지적한다. 그것은 ‘자기 의’가 된다는 것이다. 그 칭찬 받는 가면의 모습이 자기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자는 자기가 형편없는 자임을 잘 아는 자이다. ‘나는 죄가 많다. 나는 구제 불능임’을 아는 자이다. 이 인식이 참으로 내 안에 인식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로 신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의로는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의 위선은 그것이 나의 의가 되어 돌아와 결국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공생애 때에 다른 것에 대하여는 묵인을 하셨어도, 이 위선에 관하여는 엄한 어조와 독설로 경고하신 것이다. 그럼 외식하는 자의 특징은 무엇인가.

● 외식하는 자의 특징 : 사람 의식

본문은 구제할 때의 외식하는 자의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 회당과 거리에서 하고, 나팔을 불며 한다고 얘기한다. 이것은 구제할 때에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하고, 구제한 사실을 온 동네에 떠들며 과시하듯이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기도와 금식 역시 동일한 내용의 경고를 하셨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6:5,16) 그러니까 외식하는 자의 특징은 어떻게든 자기의 선행이 사람에게 알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대하여 엄히 경고하셨다. 왜 그러셨는가.

그것은 내 신앙의 행위들이 사람을 의식하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임하는 진정한 교제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도 역시 주님은 골방에서 은밀하게 개인적으로 기도할 것을 중요하게 가르치셨다.(5절) 하지만 이 말이 기도는 꼭 혼자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신다는 말씀도 하셨기 때문이다.(마18:19)

그럼 혼자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데, 왜 굳이 함께 모여 합심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골방의 기도와 합심 기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혼자 하는 기도 보다 합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더 잘 들어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이유는 기도하는 자리에 나온 그 사람을 위해서이다.(마18:19)

혼자 하는 기도는 의지가 흔들리기 쉽다. 하지만 합심하여 기도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어 내 기도의 의지를 견고하게 한다. 기도 생활을 지속할 수가 있다. 그러나 만일 합심 기도가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면 먼저 골방의 기도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혼자 하는 개인 기도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구제, 기도, 금식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런 신앙의 생활 속에 사람에 대한 의식이 하나님 보다 앞서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참 믿음으로 성장할 수 없다. 그럼, 바른 구제 방법은 무엇인가.

● 구제 방법 : 은밀하게

구제 방법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해야 한다. 이 말은 나의 구제를 다른 사람 뿐 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하라는 것이다. 구제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하는 자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구제의 내용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은 요구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은밀하게 구제 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한 딜레마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앞서 5장에서는 ‘빛과 소금’으로 신자의 착한 행실을 사람들이 알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는 말씀과 상충된다. 어떻게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그것은 너희 빛을 사람에게 알게 하라는 것은 ‘너희가 가진 빛’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나의 행위를 통하여 알게 하라는 뜻이다. 반면에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는 것은 나의 의가 드러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다.


결국 우리는 이 땅의 삶 가운데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 한다. 내 삶을 통해서 나의 의가 가려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드러나기를 말이다. 그 훈련을 통해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의 갚으심의 은혜가 모두에게 충만하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사람들이 아는 나와 실제의 나의 차이가 있는가. 어느 부분이 그러한가.

3. 내가 한 선행을 사람들이 몰라 줄 때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4. 나는 사람을 의식하는 편인가. 아니면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편인가. 왜 그렇게 행하는가.

5. 내 선행을 통해서 예수는 드러나는데 나는 알아주지 않으면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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