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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2022. 산상수훈Ⅲ(3) 화목의 원리 마5:21~26절

예수님은 율법의 내용들을 한층 더 심도 있게 들어가서 그들이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율법의 겉치레를 신랄하게 깨부수고 있다. 그것은 5장 21절을 시작하여 마지막 절까지 이어지는 살인, 간음, 결혼, 맹세, 보복, 원수 갚는 일. 이렇게 6가지이다.

예수님이 그들을 어떻게 비판하는가. 일단 이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으리라’는 말이 본래 율법에 없다.(21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에 해석과 전통으로 추가된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단지 구전(oral tradition)이다.

실제 율법에는 부지중에 살인을 한 경우는 오히려 도피성에 피신케 하여 보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살인을 하면 예외 없이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은 일반 유대인들로 하여금 살인만 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심어 주게 되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살지 않고, 전통과 의식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이다.

이로 인하여 때로는 많은 신자들이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하여 행하는 것이 실제적으로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전통과 규례대로 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목사를 대하는 태도가 그러하다. 대부분의 경우 성도들은 목사를 참으로 잘 섬긴다. 하지만, 이 섬김이 ‘목사에게 잘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이다’라고 생각하면 아주 위험하다.

실제적으로 보면, 목사를 잘 섬기는 분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목사라는 ‘신분(identity)’을 가진 자를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의 리더라는 ‘직위(position)'을 가진 자를 섬겼기 때문에 주시는 하나님의 칭찬이다.

담임 목사는 교회 공동체의 리더이다. 그렇기에 목사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절망감에 빠져 있으면 교회 공동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럼 의미로 목사가 교회의 리더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또 리더를 존중해 주는 사람을 하나님이 특별히 여기는 경우인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목사를 보호하는 것은 그것이 목사라는 신분을 가진 자, 즉 일반 평신도와 구분되는 특별히 영험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키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 보자. 어떠한 이유로 목사가 수년 동안 부재인 교회의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 교회의 리더는 안수 집사님과 실행위원들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 안수 집사님들과 실행 위원분들에게 목사에게 주는 똑같은 권위를 주시고, 이분들을 지켜 주실 것이다. 이 리더들을 잘 섬기는 자들을 복을 주시고, 그렇게 대하지 않은 분들에게 그것이 잘못됐다는 여러 싸인을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회의 리더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교회를 지키시기 때문이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대언하는 사람도 아니다. 기존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목사는 월급을 받고 성도의 기도를 대신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성도가 기도를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성도에게 벌어진 문제는 성도 스스로가 목 놓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목사의 기도를 평신도의 기도 보다 더 잘 들어준다는 생각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목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고, 목사는 성도들이 목사를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지도하는 사람이다. 그런 역할을 해야 할 목사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의지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목사를 우상으로 만드는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선언한다. 예수를 믿는 신자는 모두가 다 왕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일에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벧전2:9) 이 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복을 여러분 대신 목사가 대신 채우는 것으로 만족해하면 안 된다. 한몸교회는 이 일에 부름을 받았으며 꾸준하게 우리의 공동체가 복음 위에 서는 교회가 되도록 힘을 다해야 한다.

예수님은 전통과 규례를 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하셨다. 화내고, 욕하는 것도 살인과 같아서 지옥불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22절) 그렇다면,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우리가 그것에서 자유하다는 말과 대치가 된다. 무슨 뜻인가. 사도 요한은 이 말씀을 이렇게 연결시킨다.

미워하는 자 모두가 살인자와 똑같이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요일3:15,16) 그 십자가 공로가 우리를 살리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예수를 더욱 붙잡게 되어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는 23, 24절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 구절은 전통적으로 해석하기를 '예배를 드리기 전에 너와 관계가 안 좋은 사람들과 먼저 화해를 해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너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에 나왔을 때에 누군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지라도, 심지어 아직 그와 화해를 하지 못했을 지라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예전에는 죄를 지었을 때에 반드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희생재물을 바쳐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희생 제물이 되어 단번에 자기를 드려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셨기 때문이다.(히7:27)

그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하시며 형제와 화목하지 않고 예물을 드리면, 그 예물을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 없다. 그럼, 23,24절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만일 참된 신자라면 형제와 화해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권고이다.

23절의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24절의 하나님 앞에 참으로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은 반드시 '네 형제에게 원망 받을 만한 일이 생각이 난다'는 것에 강조가 있다. 진정한 신자라면, 참으로 예수를 믿는 자라면 반드시 내가 해결해야 할 인간관계가 예배 중에 걸린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형제와 화목하라고 내게 주시는 메시지이기에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형제와 화목해야 할 일이 있는데 예배를 드리며 전혀 인지가 되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진심으로 신자인가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성경이 아닌 전통으로 행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면 나누어 보라

2. 교회의 리더(목사, 안수 집사, 실행위원들, 목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

3. 본인이 생각하는 목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4. 미운 사람을 대하는 본인의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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