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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2021. 사도행전 강해(56) 참된 믿음의 길. 행27장 전체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하는 바람에 총독 베스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로마로 후송을 해야 했다. 그 항로 중에 바울이 탄 배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고 파선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 신자가 가져야 할 참된 믿음의 자세는 무엇인가.

● 참된 믿음의 길

오늘 본문에는 백부장과 군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항해에 익숙한 선장과 선원마저도 엄청나게 당황하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 전혀 흔들림이 없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울이다. 그가 갖고 있는 믿음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큰 위기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가.

니제이 굽타는 ‘바울과 믿음 언어’라는 책에서 믿음을 이렇게 소개한다. “바울의 관점에서 신자들의 믿음은, 올바른 데이터나 프로그램을 소유하는 일에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믿음은 올바른 운영 체제를 사용하는 일과 연관이 있다.”

무슨 말인가. 참된 믿음이란, 내가 평생을 통하여 익히고 배운, 믿음에 관한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장착하고 있는 그 믿음을 실생활에 사용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많은 크리스천들이 내가 실생활에서 그 배우고 익힌 믿음의 운영 체제를 사용하는 믿음은 없고, 내가 어떤 좋은 믿음의 프로그램을 장착했다는 것에 훨씬 더 많은 자랑을 삼는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의 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행위를 이해하면 참다운 믿음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따라오는 여러 가지 변화들이 있다. 그것은 어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을 이제 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든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 이타적인 생각, 교회의 헌신과 봉사 등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사실 굳이 믿음이 없어도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믿음의 내용인 것들은 분명하다. 그러나 꼭 반드시 믿음의 결과라고 말하기에는 곤란하다.


반면에 믿음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회개’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날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것은 다 해도, 이 회개만은 하지 않는 교인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문제는 회개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신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성경을 읽는다. 기도를 한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이수한다.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한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도 믿는다. 그 길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도 알고 성령이 내주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회개하지 않는다. 본인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지 않기에 남이 짓는 죄를 참아내지 못한다. 거룩이라는 이름 앞에 예수의 십자가는 없다. 오직 내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선한 의만이 나를 거룩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하여 참된 믿음의 열매들이 맺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모르고 있는 교인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다.

회개의 또 다른 뜻은 ‘가던 길을 돌이키다’이다. 본인의 잘못을 고백한 것이 회개가 아니다. 반드시 내가 가는 길이 믿음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그 믿음의 길은 세상의 길과 다르다.

행여 내가 가는 믿음의 길에 서서, 세상과 비교하여 열등감을 느끼거나, 흔들림이 있거나, 자신감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신자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이 무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의 길이 아닌 믿음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이 길은 세상의 길과 다르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내가 걷고 있는 이 믿음의 길을 세상의 길과 비교하고 있다면 우리의 다수는 결코 이 땅의 삶이 평안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자라고 해서 특별히 작은 노력으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우연한 기회로 명예를 얻거나, 모든 중병에 걸린 자가 다 나음을 입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이 자신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그의 영혼이 자유로우며 기쁨이 있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과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의 길과 세상의 길을 비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 상식이 아닌 말씀

우리가 이 땅을 살아 갈 때에는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조언이 영적인 것과 대립할 때는 반드시 말씀의 길을 걸어야 한다. 오히려 내가 어렵게 쥐고 있는 것을 버려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사는 길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살아야 내가 산다.

본문의 배 안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바울을 무시하고 자식들의 상식을 좇아 길을 떠난다. 처음에는 순풍이었으나 곧 광풍을 만난다. 그 때 그들이 한 일은 그들이 갖고 있는 짐과 기구들을 버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것을 다 버렸다.(18, 19절)


그렇다. 버려야 산다. 상식과 지식 뿐 만 아니라, 과거의 나쁜 습관들을 버려야 한다.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노력과 절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방향에 맞게 가야 한다.

버리면 끝인가. 그렇지 않다. 버려서 비워진 공간을 하나님의 말씀과 순종으로 채워야 한다.(23~25절) 그 때 이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안심하라’는 것이다. 다 무사하며 세상의 어려움을 이길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것을 믿은 배안의 사람들은 남은 떡을 다 먹고 나머지를 바다에 버렸다. 믿음이 있는 자들이 행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그들은 얼마 안 있어 육지를 발견하고 구원을 얻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은 보여 지는 것으로 자랑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현실을 뚫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나를 가로 막는 가장 큰 적은 아마도 ‘나’일 것이다. 그 세상 속에 있는 나, 내가 알고 있는 이성과 상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 나를 꽉 막힌 상자 속에 가두어 두고 나오지 못하는 나. 그것이 내가 싸워야 할 싸움이고, 이겨야 할 대상이다.

● 나눔 질문

1. 성경의 말씀 중에 내 머리에는 있으나, 실제 생활에 잘 사용하지 못하는 말씀이 있다면 나누어 보라.

2. 일반 자범죄가 아닌 원죄에 관한 부분(나는 모태로부터 죄인이라는 것)으로 회개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언제였는가.

3. 내가 잘 용서하지 못하는 죄는 어떤 것인가.

4. 내가 버려야할 것들을 5가지만 말해보라.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여 버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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