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07.25.2021. 사도행전 강해(54) 능력 그리고 맡김. 행24:1~9절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고용한 변호사 더둘로는 바울을 네 가지로 고소한다.


첫째, 전염병 같은 자다. 둘째,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다. 셋째,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다. 넷째,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이다.(5,6절)


바울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그들을 위함이다. 자기 민족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이 안타까워서 전도한 것인데 오히려 이 일로 고소를 당한다. 이런 곤경에 놓일 때에 크리스천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 때에 우리가 사용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인가.


● 하나님의 능력

바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처한 재판의 상황을 먼저 살펴본다. 그래야 그 능력의 진가, 혹은 본질을 더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4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1) 아나니아(대제사장) : 유대인의 실질적인 행정수반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를 경멸 받아 마땅한 교활한 인물이라 말하고 있다. 전임 제사장을 음모와 계략으로 죽게 하고 대제사장이 된 후에는 성직매매와 재산 불리기를 일삼았다. 최고의 악당이다.


2) 더둘로(변호사) : 원어의 의미는 연설가이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다. 그렇기에 로마제국의 법으로 그를 옭아매야 한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법을 어긴 적이 없다. 그렇기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로마법과 유대법을 잘 아는 사람을 고용한 것이다. 그가 가진 화려한 언변으로 바울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3) 벨릭스(총독) : 총독은 로마 외의 영토, 즉 속국의 최고 법관, 군 통수권자, 정치와 행정수반으로 이스라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절대 권력자이다. 이 사람의 본래 신분은 노예였다. 그의 형 팔라스의 좋은 수완 덕에 자유인이 된 그들은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많은 부를 축적하여 결국에는 총독이 됐다. 로마의 역사가인 타키투스에 의하면 로마 역사상 가장 타락하고 비열하며 돈에 욕심이 많은 자였다고 한다.


4) 드루실라(총독 벨릭스의 아내) : 그의 할아버지는 예수님이 태어났을 당시 2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였던 헤롯 대왕이며, 그의 아버지는 사도 야고보를 죽인 아그립바 1세다. 그의 오빠 아그립바 2세는 자신의 친누나(버니게)와 결혼하여 근친상간으로 많은 욕을 먹었던 자다. 이런 면을 보면, 드루실라의 집안은 기독교인을 아주 싫어하며 윤리와 도덕도 없는 가정임을 알 수 있다.


지금 이것이 재판을 받고 있는 바울이 놓여 있는 현실이다. 그 누구도 상식적이거나, 윤리적인 사람이 없다.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은 고사하고 죽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 놓여있는 바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인가.


뜻밖에 바울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능력은 이 위기의 상황을 모면하여 풀려나는 기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앞서 베드로 사도는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을 탈출했었고, 바울과 실라 역시 찬양할 때에 옥문이 열렸던 기적을 체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풀려나는 것은 고사하고 바울은 2년을 가이사랴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그에게 아무런 기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다. 바울은 이 험악한 상황 가운데 재판을 진행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 그의 마음에 분노나 두려움이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바울이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라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의 거리를 찾아서 평안을 누렸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가이사랴 감옥은 이전의 지하 감옥과는 달리 헤롯궁 안의 방이었다. 그렇기에 자유롭게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환경과 충분한 휴식을 누리게 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이유로 평정을 잃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가 이런 환경 속에서도 평강을 잃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의 능력이 가진 본질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서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우리의 승리란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경제적인 궁핍함과 병고와 환란이 해결되어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오늘 없어졌다가도 내일 다시 찾아온다.


하나님의 능력은 오히려 약함이다. 가난함이요, 궁핍함이요, 박해요, 곤고이다. 그 약한 때가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나게 되는 시작이다.(엡3:16,요14:27,고후12:9,10, 고후13:4 etc...)


하나님의 능력은 오히려 그 상황 속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에게 나타난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든든히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자의 모습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자의 성숙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자로 빚으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단련하실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능력의 삶을 이룰 수 있는가. 그것은 ‘맡김’이다. 바울은 이것을 깨달았다. 내 인생을 주관하고 계신 분이 계심을 믿고, 그 분께 적극적으로, 의지적으로 맡기는 것이 신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깨달은 그는 자신의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이다.(골1:24~29)


내가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필요하다고 외치며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것이 신자가 가져야 하고 보일 수 있는 최상의 성숙이요 우리가 이루어야 할 방향이요, 길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능력이 아니다. 그 문제로 말미암아 괴로워했던 내 마음 속의 괴로움이 물러가고 기쁨과 평강이 채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영적인 승리요.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빚어지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그리스도인의 감사와 세상인의 감사를 구분할 수 있는가. 어느 부분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3. 왜 이번에는 바울에게 옥문이 열려지는 기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4. 바울이 2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그의 신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5.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는 것을 실제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보라.

76 views

Recent Posts

See All

4.21.2024  요한복음 강해(43). 세상의 선택. 요18:28~40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최소 5번의 심문과 재판을 받으셨다. 이 때 예수님을 심문한 사람은 안나스, 가야바, 헤롯 그리고 빌라도이다. 이렇게 많은 재판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죄가 없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이들의 사형 판결과 집행권은 로마 총독 밖에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31절) 이런 이유로

*** 알리는 말씀 (4.19.2024) ***

● 주일 오찬 이번 주일(21일)에는 2부 예배 후에 점심 식사로 ‘비빔밥’이 준비됩니다. 일정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선착순 배부 : QT 생명의 삶 도착 5월 달 ‘생명의 삶’ 책자가 도착했습니다. 선착순으로 배부됩니다. 신청을 하지 않으셨더라도 필요하신 분들은 안내석에 구비되어 있는 책자를 픽업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격은 $7불입니다. 헌금 봉

4.14.2024. 요한복음 강해(42). 예수 안에 있는 자의 외침. 요18:12~27절

예수님 당시에는 대제사장이 여러 명이 있었다. 그들 모두 ‘안나스’라는 사람의 아들 혹은 사위였다. 즉, 대제사장의 실세는 ‘안나스’이다. 가룟 유다의 배신에 의하여 체포당하신 예수님은 안나스에게로 끌려가 심문을 당했고 안나스와 몇몇의 공회원들은 모여서 예수님을 사형으로 정죄한다.(막14:64) 요한은 이 대제사장이 심문한 이야기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