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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2022. 에베소서 강해(18) 보이지 않는 싸움 엡6장 10~17절

사탄 마귀는 우리의 삶과 영혼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한다. 바울은 이 영적인 싸움이 가장 중요한 신자의 싸움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것을 에베소서 마지막 챕터에 다루었을까. 왜냐하면 영적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에베소서 첫 세 장에 걸쳐서 신자란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먼저 일깨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구원 받은 백성이기에 우리가 얻은 구원은 절대 취소되는 일이 없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죄사함을 받아 자유인이 되었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경륜 아래에 있다는 것을 계속 언급했다. 영성은 추상적인 힘이 아니라 지성이 기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사탄 마귀의 구체적인 간계에 대하여 살펴본다.

1. 언제 공격하는가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고자 할 때에 공격이 시작된다. 반대로 말하면 신앙인으로 살기 위한 아무런 노력이 없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왜냐하면 사탄 입장에서 자기 편에 서 있는 자를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오히려 놔둔다.

이것이 영적 싸움이다. 그렇기에 만일 내가 예수를 믿었는데 아무런 고민도, 갈등도 없고 날마다 내 안에 평강이 넘친다면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 평화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 안에 영적인 갈등과 전쟁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참된 신앙인은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매일 같이 자신을 복종시키고 자신을 부정하고 십자가 앞에 꿇어 엎드리는 싸움이 마땅히 있어야 한다. 이 싸움을 하지 않으면서 내가 오늘도 변함없이 기도했고, 성경을 읽었기에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2. 어떻게 공격하는가

마귀들이 신자의 신앙의 길을 방해하기 위해 가장 잘 쓰는 방법은 우리의 마음(mind)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고후4:4) 여기서의 마음(헬.노에마)은 감정이나 심정을 말하지 않는다. 정신, 지성, 생각, 사고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마음을 혼미케 했다는 것은 우리의 지성을 흐리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사탄은 진리를 숨기지 않는다. 언급한다. 그런데 살짝 그 내용을 비튼다. 이로 인해 우리의 지성과 생각이 마비되고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든다. 그 문제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본다. 우리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을 안다. 그런데 여기서의 믿음은 내 의지와 노력과 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상이다. 그러니까 내가 굳건한 정신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하면 산다는 것이 아니다. 내 믿음의 대상인 예수가 나를 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을 혼동케 만든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앞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킨다. 그 때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내게 있는 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고 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게 있는 무언가가 그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를 일으킨 것이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아는 자에게서 나오는 행동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병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음을 입으라고 명했을 때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도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일어나도 내 능력이 아니고, 안 일어나도 내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일은 내가 아닌 예수가 행하는 것이다. 낫거나 그렇지 않거나 이는 하나님의 뜻하심 아래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교묘하게 우리의 지성을 흔들어 놓는다. 나로 하여금 주제 넘은 짓을 행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낫고 안 낫고는 내 손에 있지 않기에 담대히 행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체험 역시 그러하다. 간증의 대부분은 기적 체험이다. 나을 수 없는 병이 나았던가, 망할 위기에 놓인 사업이 일어났을 때에 우리는 간증한다. 기적이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절대 병이 걸릴 수 없는 환경에 병이 걸리거나, 망할 수 없는 사업이 망했다면 그것 역시 기적이다. 그 역시 간증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을 체험하는 것을 간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이 궤변으로 들리고, 억지라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성경에는 이를 간증한 사람이 있다. 바울이다. 바울은 매 맞고, 파선하고, 배신당한 것을 간증했다. 심지어 '드디어 나는 감옥까지 왔노라'하고 껄껄 거린다. 바울은 남들이 보기에 처절하고 저주스러운 상황에서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라고 간증한다.


진정한 믿음은, 내가 겪는 모든 체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확실히 믿는 것이다. 그 확신이 있을 때에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참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3. 무엇을 공격하는가

신자라면 누구나 다 공격 대상이다. 신자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공격 빈도와 강도가 세질 것이다. 이것을 이기는 것이 실력이다. 그러다 보니 사탄이 신자 개개인을 공격할 때에 오히려 그것을 이겨내는 신앙의 위인이 탄생한다. 그래서 사탄이 작전을 바꿨다. 교회를 공격하기로 했다.

왜 교회인가. 교회는 신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신앙의 상징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사탄은 교회의 리더십을 공격한다. 이는 꽤나 효과적이었다. 많은 교회들이 무너졌고, 기독교를 등진 인구들이 수년 사이에 급등했다. 특별히 이들은 목사를 공격한다. 목사의 도덕적인 물의를 통해서만이 아니다. 강단의 메시지를 변질시킨다.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심판과 사랑이다. 그러나 기독교를 축복과 사랑으로만 강조된 일변도로 메시지가 선포되게 만들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을 혈과 육으로 고정시키게 만든다. 신앙을 마비시키는 확실한 변질이다.


이러한 사탄의 공격에도 우리가 흔들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모든 영적인 싸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금과 같이 만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주와 하나 됨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예정과 경륜아래에 있음을 기억하고 반드시 이 싸움에서 승리하여야 한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 평생에 가장 지속적인 영적인 싸움은 무엇인가. 왜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가.

3. 내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있는가. 어떤 일이며 왜 그렇게 생각되었는가.

4. 세상의 성공이 아닌, 나의 약함을 간증한다면 어떤 부분을 말할 수 있는가

5. 복음 설교와 그렇지 않은 설교에 대한 인식과 구분이 가능한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구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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