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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2019.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Ⅱ : 기도의 재건(2). 느1:1~11절

기도는 기독교 신앙의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지침대로 기도하지 않고, 내가 세운 기준, 혹은 전통적으로 내려 온 한국의 무속 신앙의 기도를 따라 기도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와 그들의 기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1. 치성이 아닌 소통

우리의 기도와 그들의 기도의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은 치성, 즉 열심과 정성이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키(Key)이다.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열심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고, 금식으로 기도하고, 최선의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그 열심 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열심을 통해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느헤미야는 조국 이스라엘 땅이 피폐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한다. 4절에 보니까 ‘금식’으로 기도했다. 이것은 열심과 정성을 다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했다. 기도 가운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이어서 하나님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11절).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일선에서 뛰어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기도를 통하여 내 일방적인 소원을 아뢰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하여 하나님이 내 인생 속에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이다. 이것이 무속 신앙의 기도와 다른 점이다. 이방신은 여러분이 기도한 액면 그대로 응답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좋을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신은 우리가 요구한 그대로, 기도 한 내용 그대로 응답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과 힘을 증명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내 인생 속에서 무엇을 원하는 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이 느헤미야의 기도이다.

성경에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좇아 행했던 가장 좋은 예는 다윗이다. 다윗은 사울왕의 질투로 인하여 도망자로 전략한다. 동굴에서 주로 생활을 한다. 그래서 그는 억울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참 많이 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 동굴에 부하들과 함께 있는데 사울이 비무장인 채로 그가 있는 동굴에 들어와 용변을 본다. 그의 부하들은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기에 사울 왕을 죽일 기회라고 하였고, 그것은 별로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이지 않고 옷자락만 베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다윗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넓고 큰 계획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 욕심으로 귀와 눈을 막고 기도하면 눈 앞의 일만 보이지만, 하나님과 소통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다윗은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했다. 자신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결과로 그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울 왕이 더욱 미친 듯이 그를 죽이려고 쫓아 다녔다. 이것이 우리를 낙담케 한다.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몰려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단기적인 관점이었고, 장기적으로는 다윗은 이런 결정으로 인하여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에게 큰 복이 되었다.

다윗은 이 일로 인하여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고, 왕이 된 후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살려 준 모습을 봤던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다윗이 추구하는 가치가 곧 하나님의 가치라고 믿고 그와 그의 후손을 전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큰 복이다.

2. 형식이 아닌 진심

이방 종교는 기도의 형식이 아주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 자세, 룰이 있어서 그 형식에 따라 기도한다. 이방의 기도는 정근, 진언이라고 하여 관세음보살 혹은 옴마니 반메훔 같은 것을 반복하면 복이 온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기도 역시 형식이 있다. 왜냐하면 형식이 있어야 내용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 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고, ‘진심’이다. 우리의 기도는 어떤 형식이나 내용이 담긴 뜻 모를 문장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담아 마음으로 올리는 진심이 중요하다.

느헤미야는 1장에 보면 ‘금식’으로 기도했다. 주어진 형식이 있는 기도였다. 그러나, 2장에 들어와 왕 앞에서 올린 기도는 완전히 다른 형식의 기도이다. 느헤미야는 조국의 소식을 듣고 근심했다. 그 근심이 있는 얼굴을 보고 왕이 이유를 묻는다. 그 때 그는, 아주 잠깐 하나님 앞에 ‘묵도’한다. 이것은 결코 어떤 형식이 있는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짧지만 아주 강력하게 자신의 진심을 담은 말을 던진 것에 불과하다. 짧은 말이었는데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의 마음을 담은 소원에 응답하사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가 유대 땅으로 가는 것을 허락케 하셨다.

형식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없는 100일의 기도보다 진심을 담은 한 마디를 하나님은 훨씬 중요하게 여기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이고, 성경이 말하는 신자의 기도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각자가 가진 기도의 습관, 방법 혹은 자세에 대하여 나누어 보라.

3. 열심히 기도했는데 안 이루어진 기도가 있었는가? 그 당시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가?

4. 짧은 기도였는데 이루어진 기도가 있었는가? 그 당시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가?

5. 기도가 잘 안된다면, 잘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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