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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2021. 사도행전 강해(49)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행21:1~14절

바울은 세 번의 전도여행을 통하여 많은 수고와 고난을 당하며 교회를 세운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감옥이다. 전혀 유쾌하지 않다. 사실 바울의 전도 여행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가 가는 곳이 복음화가 되거나, 회심자 수가 늘어나는 것은 고사하고, 거의 대부분이 쫓겨나가나 매를 맞았다. 믿는 자가 탄생을 해도 소수 일뿐만 아니라 본인이 세운 고린도 교회에서는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는 공격까지 받았다. 그의 사역은 실패였다고 말해도 그닥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의심이 가능하다. 그의 사역이 정말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의 결과를 놓고 본다면, 그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본인의 열심과 열정으로 사역을 감당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 전도 여행 마무리 과정

밀레도를 떠나 고스, 로도, 바다라를 거쳐 배를 타고 두로에 도착한 바울은 그곳에서 제자들을 만나 7일 동안 같이 지낸다. 이 때 제자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을 만류한다. 그가 그곳에서 큰 고난을 받을 것을 성령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떠난 바울은 돌레마이를 거쳐 가이사랴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일곱 집사 중 한명인 빌립을 만난다.

빌립은 어떤 사람인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광야에서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여 침례를 준 사람이다. 이 빌립이 이렇게 떠돌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바울이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당시에 교회를 잔멸하여 믿는 자를 옥에 넘겼었다. 이로 인하여 빌립이 사마리아로 도망하게 된 것이었다.(행8:3~5)


바울과 빌립은 악연 중의 악연이다. 그런데 빌립이 가이사랴에 정착을 했는데 20년이 지나서 그곳에서 바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적군이 아니라 동역자로 만났다.

빌립의 집에서 아가보라는 사람이 바울의 미래에 대하여 예언을 했다. 그것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유대인에게 결박을 당하고,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손에 바울을 넘겨주게 된다는 것이었다.(11절) 이 예언 중에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먼저 맞은 부분은, 이 일이 예루살렘에서 벌어진다는 것과 바울이 결박당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결박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때리고 있는 중에 이방인인 로마 천부장이 구출해 냈고, 그들이 바울을 결박했다. 이방인이 오히려 구출한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울은 아가보에게서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런데 사실 바울에게는 이 예언이 처음이 아니었다.

바울은 이 예언을 세 번이나 성령을 통하여 이 사실을 전하여 들었다.

첫 번째는 드로아를 떠나기 직전에(20:23), 두 번째는 두로의 제자들이 말리면서(21:4), 세 번째는 예언자 아가보를 통해서이다.(21:11). 그럼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유추 가능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울이 사역에 실패한 이유가 성령의 음성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령이 세 번씩이나 바울의 고난을 예언하며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바울은 말을 안 듣고 갔다. 이를 통해 보면 그는 성령으로 사역한 것이 아니라, 자기 비전, 욕망, 과시로 사역을 해서 결국에는 죽음까지 이르렀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는 성령이 바울 보고 가지 말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이 예언한 것은 바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당하여 이방인에게 가게 된다”는 것까지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가지 말라고 한 것은 성령이 아니다. 두로의 제자들과 가이사랴 사람들이다.(12절)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예언하는 사람들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예언을 전하는 사람이 성령의 음성에 자기의 해석을 덧붙여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과 실제의 하나님의 뜻은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경우를 도입해 보면, 내가 고난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고, 심지어 망하는 것이 충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않으면 결코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 하나님의 뜻 구분 방법

그것은 ‘말씀’이다. 성경 외에 내가 믿고, 의지하고 ,기준 삼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성경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기에 힘을 쓴다면 결국에는 모든 생각이 예수로 모아지게 돼 있다. 왜냐하면 성경이 기록된 목적과 이유는 단 하나, 예수를 드러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모든 텍스트가 예수를 가리키고, 예수를 지목하며, 성경의 모든 방향이 예수로 모아진다. 그렇기에 우리가 바른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나의 사고와 길과 방향이 예수로 모아 지게 될 수밖에 없다. 만일 지금까지 내가 성경을 읽으며 단지 삶의 교훈과 지도를 위해서만 읽었다면 그것은 성경의 본래 기록 목적과는 전혀 다르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설교의 시작은 바울의 사역은 실패한 듯한데, 과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한 것이 맞느냐라는 것이었다. 이 질문의 답은 ‘완벽히 그렇다’이다. 그는 자기의 유익과 안전과는 상관없이 성령이 가라는 곳까지 가고 서라는 곳에 선 사람이다.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는가.

그는 사역할 때에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잊기 쉬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는 바리새인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다 외웠던 사람이다. 그는 그가 알고 있던 성경의 방향성을 몰랐을 때에 방황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난 이후에는 자기가 가진 성경의 궁금한 모든 것이 한 순간에 해결이 됐다. 그것은 예수였다. 예수라는 방향이 성경과 맞다는 것을 확인한 후로는 한 번도 그의 인생에 흔들린 적이 없다.

그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세 번이나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그 음성은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때 신앙을 자기의 안위와 평안으로 삼는 사람은 ‘성령께서 가지 말라’는 것으로 듣는다. 그러나 자기의 인생이 예수로 고정되어 있는 바울은, ‘성령이 세 번이나 말해서 나에게 확신을 준다. 나를 준비시킨다’고 해석한다. 똑같은 음성인데 해석이 달라진다. 이것이 신자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완성으로 가는 신앙의 길이다.

● 나눔 질문

1. 하나님을 위한 수고의 결과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경우에 나의 반응은 어떨 것 같은가.

2. 평소에 세 번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을 보면 무슨 생각을 했는가.

3. 내가 평소에 잘 사용하는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는 개인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장점과 단점은?

4. 성경을 묵상할 때에 내가 주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유익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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