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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2022. 에베소서 강해(13) 새 사람이 행하는 정의. 엡4장 20~32절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라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하여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맞대하는 정의에 대하여 고민하고 정리했다. 책의 서두에는 ‘공리주의’에 대하여 다룬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말한다. 즉, 최대 다수가 최대 행복을 느낀다면 소수가 불행할지라도 그것이 곧 ‘선’이고 ‘정의’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의 세상을 살다보면, 그것을 절대적인 정의라고 말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변수를 만나게 된다. 로마에서 자행되었던 소수의 기독교인들을 사자밥이 되게 한 일이 그러하다. 로마인 다수가 집단적 황홀경을 느낀다고 해서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희생되는 것은 결코 선, 정의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는 무엇이고 어떤 삶이 정의롭게 사는 삶인가. 본문의 새 사람이 무엇을 행하여 정의를 이루는지를 살피어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를 도출해 본다.

본장 20~32절은 새 사람의 특징을 묘사한다. 그런데 헬라어 시제를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그것은 옛사람을 벗고(22절) 새 사람을 입는 것(24절)이 부정 과거 시제인 것이다. 즉,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과거에 이미 끝났다. 옛 사람을 벗는 동시에 새 사람을 입었다.

반면에 우리가 살아갈 때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심령이 새롭게 되는 일’이다. 이것은 시제가 현재형이며 수동태이다. 곧, 심령이 새롭게 되는 일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 해 주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 심령이 새롭게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럼, 심령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구체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단순 정의하면, 인간의 마음 뒤에서 마음을 조정하고, 지배하고, 주장하는 어떤 내적 원리다. 이 심령이 새롭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 위하여 내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 새 사람(신자)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디자인(design) 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24절) 이것이 우리가 창조되었을 때에 내 안에 지정된 매뉴얼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그 길로 가야지만이 우리의 창조 목적에 맞는 삶을 살게 되고, 그 길로 가야 행복할 수 있다. 우리에게 심어진 이 거룩을 향한 방향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길을 걸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지속적으로 부어 주시는 것이 심령이 새롭게 하심이다. 내 마음을 주관하는 어떤 내적 원리가 계속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럼, 거룩을 향한 방향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날마다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21절) 그의 가르침대로 행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심령이 새롭게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새 사람으로써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위의 말씀은 어쩌면 혹자에게는 지금까지 생각했던 신자의 삶과 다를 수 있다. 어떤 부분이 다른가. 일반적으로 많은 분들이 안 좋은 일을 겪거나 어떤 일로 인하여 내 감정이 컨트롤 안 되면 내가 심령을 바꾸기 위하여 노력한다. 기도하고, 금식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며칠 씩 묵언 수행을 하기도 한다. 모두가 번뇌한 심령을 깨끗케 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성경은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은 수동태이다. 나의 직접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씀으로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을 좇는 삶을 행할 때에 ‘내 심령의 깨끗함’이 부어진다고 한다.

우리는 항상 이와 반대로 간다. 자신의 심령이 깨끗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에 주의 일을 하지 않는다. 내가 열심히 수양을 해서 심령이 깨끗해지면 그 때 비로소 깨끗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주의 일을 행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선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심령이 깨끗해진 후에 내가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대로 살 때에 주께서 주시는 심령이 깨끗함을 입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모두가 지금부터 빛과 소금의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럼, 새 사람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바울은 새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말하는데 그것들은 세상의 윤리와 도덕과 다르지 않다. 또한 결코 모두가 다 그것을 다 지키며 살 수가 없다. 모두가 다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살라고 하는가. 그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의롭게 살라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답게 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오해 받고 배신당한다. 사랑을 줘도 의심을 받고, 끊임없이 공격당한다. 또한 괄시 받고, 멸시 받으며 결국에는 죽임을 당한다. 그것이 예수님답게 하는 사람이 받는 이 땅의 대접이다.

물론, 예수님처럼 살 때에 세상의 복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 일은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불신자들도 인내하고 자선을 베풀고 사랑을 주면 나중에 가치 있는 일로 보상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보상이 신자들이 받는 특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예수님처럼 사는 자들은 이 땅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말은 성경의 약속이 아니다. 내 진심과 열심과 정성과는 상관없이 받는 오해. 그리고 배신과 비방 그것이 새 사람이 걷는 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하나님은 우리 보고 그것이 정의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걸어가는 신자의 삶이라고 한다.

무슨 뜻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주의 명령과 말씀은 세상적인 시각으로 규정되는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신자가 행하는 의는 이 사회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세상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의라 얘기하지만, 하나님은 다수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나 하나이다. 나 하나가 이 세상을 살 때에 이 거친 것을 얼마나 이겨 내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에 얼마나 수고하였는가가 정의라고 한다. 그것이 그분의 정의이다.

우리는 이 말씀대로 행할 때에 오히려 망가짐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것이 얼마나 험하고 가슴을 치는 일인지를 알게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나의 변화를 이끌어 내신다.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하신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하여 참된 신자가 되어간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가 보인다. 그 분을 의지하여 나는 할 수 없으니 주께서 나를 대신하여 이루어 주소서 하고 엎드린다. 그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우리가 이루어내는 하나님의 정의이다.

● 나눔 질문

1. 내가 생각해 왔던 정의(justice)와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의 차이가 있다면 말해 보라

2. 내가 행했던 선과 의로움에 대한 보상이 없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3. 하나님은 혼자 고독히 수양을 쌓지 말고, 세상 사람에게 들어가라 하신다. 이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4. 나의 변화를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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