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2022. 에베소서 강해(5) 바울의 기도. 엡1:15~23절
- Soo Yong Lee
- Apr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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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에게 있어서 기도는 신앙의 아주 중요한 한 요소이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에 비하여 가장 큰 진보가 없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5분, 10분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기도를 내 소원을 아뢰는 도구로만 국한되어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기도는 소원을 아뢰는 도구만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기도가 교제임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기도는 내용이 바뀐다. 마치 내 친한 지인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듯이 하나님하고 할 얘기의 내용들이 무궁무진 많아진다.
대화가 끊임없이 어이지려면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대화의 대상이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내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 때에 긴 대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집중적으로 한 가지 사실을 놓고 기도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게(!) 하기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행하신 일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다.(17,19절)
기도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요 도구이다. 기도를 소원을 이루는 도구로만 여긴다면 내 소원이 안 이루어지면 하나님은 더 이상 내게 필요 없다. 하지만 기도가 하나님을 알기 위한 도구라면 내 소원 성취 여부와 상관없이 기도한다. 소원이 안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내 인생 속에서 원하시는 방향을 알게 된다. 그럼, 어떻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17절)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한다. 이 영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그 분을 소개한 책(성경)을 읽기도 하고 기도를 통해서 교제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성령이 계시가 필요하다. 성령께서 내 눈과 마음과 영혼을 열어 주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에베소서를 쓴 바울이다. 바울은 바리새인이다. 성경을 몽땅 외운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완벽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몰랐다.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어떤 분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을 따르는 제자들을 잡아서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자신의 신앙을 대변하는 일에 열심을 보이면 좋은 신앙인으로 생각한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주를 위하여 헌신하는 자가 좋은 신앙을 가진 것으로 여긴다. 물론이다. 바른 신앙은 하나님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 따라온다. 그것이 없으면 거짓 신앙이다. 그러나 만약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이 자기 열심으로만 앞세워졌다면 정말 위험하다.
바울을 보라.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릴 만큼 충성된 사람이다. 그는 예수를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늘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사랑은 불같이 뜨거웠다. 그런데 그의 열심은 잘못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나타나서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 전까지 그는 잘 믿고 있는 줄 알았었다.(행9장)
그렇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이 열심을 내는 신앙은 나 한 사람 뿐 만이 아니라, 나와 관계 되어 있는 모든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무서움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도가 바로 이러하다.
성경에는 분명히 자기 자신이 처한 현재의 문제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얘기가 참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의 선택된 자녀들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하는 것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마6:31,32) 혹시나 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지 않으면 하나님이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란, 하나님이 아버지이기에 내가 기도하기도 전에 나의 모든 필요를 이미 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을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바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바울은 계시의 영이 없을 때에는 자기의 열심을 가지고 모든 신앙을 대변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난 후는 달라졌다. 성령을 통하여 눈을 뜨게 된 후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성령이 충만해지니까, 그가 갖고 있던 모든 편견이 벗겨졌다. 그리고 비로소 바른 것을 보는 사람이 되었다.(행9:17,18)
본문의 바울의 기도 내용을 보라. 그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 사뭇 다르다. 우리가 평소에 목 놓아 부르짖는 자신의 필요를 위한 기도가 없다. 자신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에서 놓임을 받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요청이 없다. 그것이 성령으로 하나님을 바로 인지하는 자가 하는 기도이다. 그럼 개인의 필요가 아니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
그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마6:33) 바울은 그 어떤 것보다도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다. 오로지 에베소 교회와 그 교인들을 위한 기도만이 그의 편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것이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신앙의 태도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를 우선으로 삼는 자는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삶 속에서 체험하게 될 것이다.(마6:33)
우리가 기도할 때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다는 것이다. 그 능력이 이미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19절) 이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라는 헬라어 세 단어(뒤나미스, 휘페르발로, 메게또스)는 모두 ‘능력, 힘, 강력’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단어를 직역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위대함을 훨씬 능가하는 커다란 힘’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이 능력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달라고 구하지 않았다. 그 능력을 이미 받았음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심지어 그 능력은 그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이 아니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능력(the working power)이다. 그 능력이 무엇인가.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는 십자가의 능력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두렵고 강력한 힘은 죽음이다. 그 죽음의 악한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건지고, 이끌고 있는 강력한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이다. 그 권세로 인하여 그 누구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 강력한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역사한다. 우리가 이것을 명확히 인지하면 지금 내게 놓여진 현실에 대한 문제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담대함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다.(롬8:37)
이것을 깨달은 자의 기도는 분명 이전과 완연히 달라질 것이다. 두려움이 없어지고, 무엇이든지 해 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우리가 바로 그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음을 다시금 기억할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승리와 하늘 문이 열리는 기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가장 오래 기도를 했던 시간은 얼마인가. 그 때 무엇을 기도했고, 무슨 느낌이 있었는가.
3. 지난 수년 동안 나의 신앙에서 가장 많이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왜 변화가 되었는가.
4. 내 개인의 기도 보다 교회를 위한 기도를 했을 때에 어떤 변화가 내게 있었는가.
5. 바울이 자신을 위한 기도 보다 교회와 성도를 위한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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