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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1.2024. 부활절: 부활, 그 예비 된 축복 누가복음. 24장 1~12절


기독교의 큰 명절은 크게 두 가지이다. 성탄절과 부활절이다. 이 중에 가장 큰 명절로 인식되고 있는 날은 성탄절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다. 그가 왜 오셨는가. 그가 오신 목적은 분명하다. 부활하시기 위해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고, 그 목적을 완수한 날이 부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이 부활절 보다 성탄절이, 심지어 고난주간이 중요한 절기로 여기고 있다. 왜 그런 것인가.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누군가 태어나고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에 대하여 어떤 설명과 해석과 입증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부활은 다르다. 우리의 이성과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는 평소에 어느 때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의 고난을 통한 십자가의 은혜를 나눈다. 전혀 부담도 없고, 어색하지도 않다. 하지만 부활은 1년에 딱 하루 부활절에만 얘기한다. 우리 안에 굉장히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며, 제약이 있다. 그래서 성경 공부, 쎌 모임, 수양회, 부흥회 등 그 어느 때이든 부활에 대한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받은 구원은 죽은 후 가는 하늘나라에 머물고 있지 다시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한다는 것이 감격과 기쁨으로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무덤에 왔던 여인들은 천사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 이 일을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전했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11절) 그들의 상식과 이성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부활을 우리의 이성이 용납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영적인 부활’이다. 극심한 현실의 어려운 사람이 재개를 한다거나,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눌려 있는 사람들이 회복이 되면 ‘부활했다’는 말을 사용한다. 그래서 신자가 누리는 부활은 이런 ‘영적인 부활’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믿는 부활은 육적인 부활이다.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믿는 것이고, 우리도 언제고 죽은 이후에 다시 산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다 거짓이고 헛것이라고 했다.(고전15:12,14)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가짜이다. 기독교 신앙은 현재 내가 당한 곤고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겼다는 것. 그래서 내가 죽어도 다시 살 것이라는 것. 그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이다.

     

그러나 그것을 믿는 자일지라도, 우리의 삶이 쉽지 않다. 죽은 후의 부활을 확실히 믿지만, 지금 당장의 어려운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상황이 오면,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7절에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라는 말은 신자의 삶에 아주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하리라(헬.데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필요하다. 의무가 있다. 옳고 적합하다’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Must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요. 반드시 벌어졌어야만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죄인의 손에 넘겨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야 하는 일은 하나님이 정하셨고, 이 과정, 이 순서를 반드시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기에 벌어진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과 함께 놀라운 감사와 희망이 있는 말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당신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가거나 돌려가거나 생략하지 않고 그 길을 그대로 걷게 하셨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동일한 그 길을 걷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내게 주어진 어려움과 곤란함과 땅을 치는 아픔이 피해가지 않는다. 우리 역시 예수님이 걸으신 그 길을 그대로 걷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땅의 곤고함이다.

     

그러나 이제 그 어려운 상황을 당면하면 신자는 당황하지 않는다. 곤욕스럽거나 절망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과정을 미리 겪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으로 신자의 길이 어떠한지 미리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 역시 우리가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며, 예비 된 길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통과하고 부활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영적, 육적 부활이 있다.

     

이 비밀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롬8:18)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피하게 해 주는 것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과정으로 두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괜찮아진다는 말이 아닌, 본래 신자의 삶이 고단하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영광의 자리까지 가게 됨을 십자가를 보여 주며 설명하신다.

     

왜 이것이 우리에게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승리와 인내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대신 이 일을 이루었기에 우리는 그저 담담히 묵묵히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단지 그 길을 걸으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혜와 용서가 우리에게 부어진다는 것이고, 그것이 신자가 가진 복이라 하신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우리에게 채워주심을 그 부활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미리 보여 주고 계신다. 그 분처럼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화하는 것은 내 힘이 아닌, 그 분이 변화시켜 주실 것임을 약속한다.(빌3:21) 이를 믿는 자가 얻고 누리는 영광이 바로 부활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나는 영적 부활과 육적 부활 중 어떤 것을 믿고 있는가.

3. 부활절이 아닌 때에 부활에 대한 얘기를 하면 어색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4. 내가 생각하고 알고 있는 부활의 모습과 상황을 정리해서 말해 보라

5. 바울의 고난이 그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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