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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2022. 에베소서 강해(1) 평화, 평화로다. 엡1:1~3절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가장 오랫동안(3년) 머무르며 사역을 했던 곳이다. 그곳을 떠난 지 6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로마 감옥에 있던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성도로서의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 흔들리는 신앙을 바로 잡기 위하여 기록한 책이 바로 에베소서이다.

이 책은 ‘교회론’이 가장 잘 정립된 책이다. 에베소서의 구성을 살펴본다. 1~3장은 성도의 지위와 특권에 대하여 기록하고, 4~6장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실천적 삶에 대하여 다룬다. 그렇기에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교회의 모습을 개교회에 잘 접목한다면 건강한 교회가 될 것이다.

● 교회의 구성원 : 1. 성도

바울은 이 편지의 수신인을 ‘성도’라고 얘기한다.(1절) 성도는 영어로 Saint다. 일반적인 번역은 ‘성자(성인)’이다. 카톨릭에서는 성자의 칭호를 받으려면 이런 사람이 후보에 오른다. 순교자, 영웅적인 덕행을 실천한 사람, 성자의 명성에 걸맞는 사람, 하느님과 타인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착한 그리스도인이다. 즉, 평범한 인물은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인물을 칭한다.

이 정의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놓으신 일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성자는 내가 무언가를 해서 얻는 칭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내린 칭호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을 통칭하여 성도, 즉, 성자라고 이름한다. 그래서 실제적으로는 집사, 장로 보다 훨씬 더 영예로운 호칭이 성도다. 헬라어의 집사는 ‘수종드는 자’란 뜻이고, 장로는 ‘연장자’라는 뜻이다. 반면에 성도는 ‘성자, 성인’이다. 믿는 자에게 주어진 가장 영광스러운 호칭이다.

성도의 헬라어인 ‘하기오스’의 뜻을 살펴본다. 이 단어는 거룩하다는 뜻이고 성경에서 거룩하다는 말은 순결하고, 고결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구별하다, 구분하다’의 뜻이다. 이 의미는 교회라는 헬라어 뜻과 같이 간다. 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이다. ‘밖으로 불러내다’의 뜻이다.

성도와 교회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갖고 세상에서 불러내어 구분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성도가 되기 위하여 사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교회라 부르시고, 성도라 칭하시는 이유와 목적을 찾아 가는 삶을 신앙생활이라 한다.

우리는 항상 교회를 통하여 무언가 내게 채워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라고 얘기하신다. 우리를 통해서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로써 거룩한 불림을 받은 자로서 현재의 위치에서 성도의 역할을 할 때 만이 교회가 교회로서의 가치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을 내가 해 내지 않으면 교회는 교회의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는 죽은 교회가 된다. 그러나 죽은 교회도 ‘교회’다. 성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아닌 것이 아니다. 교회지만, 죽은 교회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정체성이기에 바울은 이 편지의 수신인을 성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 교회의 구성원 : 2. 신실한 자

신실한 자의 헬라어는 ‘피스토스’이다. 이 단어는 믿는 자, 즉 신자라는 뜻이다.(요20:27,행10:45) 우리는 성도, 신자, 교인을 보통 다 같은 뜻으로 여기고 사용한다. 하지만 약간씩 다르다. 잠깐 이 세 용어를 정의해 본다.


교인: 교회에 등록한 자, 성도: 구별된 자, 신자: 믿는 자이다. 그럼, 믿는 자는 모두 다 교회인가. 그렇지 않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신자는 그냥 단순하게 믿는 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 안’에 믿는 자이다.(1절) 이것이 왜 중요한가. 교회를 나오면서 예수를 믿지 않는 분이 계시거나, 혹은 내가 믿는 줄 아는 분들이 꽤나 많이 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에서 우상을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의 삶에 아주 중심적으로 본질적인 것. 만약 그것을 잃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라 했다. 이 정의로 본다면, 우상은 비단 어떤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 재산, 명예 등 없어졌을 때에 삶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우상이다.

만약에 우리 중 누구라도, 건강, 재산, 명예가 없어지면 죽을 것 같이 괴로운데, 예배를 못 드린다거나, 예수 이름을 부를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는 견딜 만 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분명, 내가 만든 신이 우상이 된 삶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만든 신’을 마음에 두고 있을지라도 성도다. 왜냐하면 성도는 내 행위의 여부로 불려지는 호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택한 자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신실한 자는 아니다.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진 자라 할 수 없다. 성도이지만, 예수 안에 있는 신자가 아니라는 것은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신앙의 길이 잘못된 것이라는 뜻이다.

만일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바울이 말하는 ‘은혜와 평강’을 절대로 누릴 수 없다.(2절)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중심적이고, 본질적인 것 그리고 삶의 의미를 예수가 아닌 다른 것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신에서 찾는 중인 것이다. 그 속에는 참된 평가가 없다.

이 은혜와 평강은 오로지 예수 안에서, 즉 예수님과 내가 연합 돼 있는 자에게서 만이 흘러나온다. 이 헬라어의 평강의 의미는 전쟁이 그친 상태가 아니다. 적대 관계인 자들과 서로 부둥켜 안은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적대 관계였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과 연합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우리가 갖는 평강이다. 이것은 절대로 세상의 우상을 통하여 얻을 수 없다.

이 평강은 내가 기도한다고해서, 묵상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베푸신 은혜와 자비 앞에서 내가 긍휼을 입었음을 확실히 인식하는 자. 나를 교회로 부르시고 성도의 정체성을 갖고 신실한 자로 그 믿음의 발을 내딛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평안이다. 이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우리의 구원이 단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으로만 알고 있으면 아주 가난한 신앙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연합된 상태에서 주어지는 이 땅의 평안과 함께 간다. 우리는 그 은혜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로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삶을 지속적으로 간섭하신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 마음에 평강을 깨는 요소는 무엇인가. 나의 평강을 크게 좌우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3. 내가 성도로서, 교회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가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4. 내가 생각하는 나에게 있어서 ‘내가 만든 신’은 무엇인가.

5. ‘건강, 재산, 명예, 예배, 예수 이름 부르기’ 중에 없거나, 하지 못하면 정말 마음이 피폐해 지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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