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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o Yong Lee

03.03.2019. 더 깊은 신앙Ⅶ: 더 깊은 믿음. 롬1:17절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믿음은 선물인가? 책임인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자라나는가?

1. 믿음의 두 영역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을 한다. 그 말은 하나님은 행위를 보지 않기에 조건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믿으면 구원 얻는다’라는 말은 조건이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분명히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조건이 없다고 말을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우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믿음도 하나님이 공짜로 주시는 선물이기에 조건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처럼 구원과 믿음을 잘 설명한 말은 없다. 하지만, 이 말 자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에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믿음의 두 영역’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에 대한 희한한 표현이 나온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니까, 믿음에 두 가지 영역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구원에는 ‘믿음’이 필요한데, 그 믿음은 ‘믿음’이라는 방법으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방법으로, 믿음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것이 만들어지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그리로 이끌어 간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에 대한 정의를 바로 알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국어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행위가 아닌, 율법의 상대적 개념’, 즉 무언가를 지켜야만이 구원을 얻는다라는 것의 반대 개념으로, 원인 없이 결과가 얻어지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표현된 단어이다.

그러니까 굳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의 첫 번째 ‘믿음’의 단어를 정의하자면,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공짜)로 주시는 구원의 총체적 표현”이다. 에베소서 2장 8절, 9절에 의하면 우리의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우리 쪽이 아닌 하나님 쪽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의 작정, 계획 그것이 로마서 1장 17절에서 첫 번째 믿음이다.

처음에 나온 믿음이 ‘하나님 쪽’에서 시작된 것이면, 두 번째 ‘믿음’은 뭘 의미하는가?

여기서의 믿음은 ‘성화’에 관계된 이야기이다. 구원 받은 자들이 살아가야 할 이 땅의 거룩하고 순결한 삶, 말씀 가운데 견고히 서가는 삶. 이런 과정 속에서 필요한 하나님을 향한 신뢰(trust)에 관한 부분이다. 이것은 성장과 성숙에 필요한 믿음이고, 인간 쪽에서 해야 할 일이 요구되어지는 믿음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주어지는 믿음은 하나님 쪽에서 선물(!)로 주어졌다면, 그 구원 후에 살아가는 방식에는 우리가 해야 할 ‘믿음’이 요구되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이 믿음은 구원의 결과로 생긴 믿음이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어떻게 얻느냐?’ 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이러한 분이시구나’를 느끼는 경험에 관한 문제이다.

이 두 번째 믿음 속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성경 속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더 많이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며 살아야 하는 것이기에 그러기 위해서는 제시된 율법을 따라야 하고 요구되는 행위들을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단 후자의 영역(구원을 받은 자들)으로 들어온 사람이 전자의 영역(구원 받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일은 없다. 한번 이루어진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의 성화의 인생길에서 하나님이 나를 책임진다는 그 믿음(두번째 영역의 믿음)이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의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가져온다.

2. 구체적인 사례 : 아브라함

우리의 믿음은 나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하여 참 믿음을 가진 자로 자라나게 되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한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창세기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한 사건이 처음 나타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사실은 그것이 두 번째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갈대아 우르(메소포타미아)가 아니라 ‘하란’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7장 2,3절을 보면 처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것은 갈대아 우르이고 그곳에서 하란까지 가는 길은 그의 아버지 ‘데라’가 인도했음을 알 수 있다. 하란에서 아버지가 죽고, 그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것이 창세기 12장의 내용이다.(그래서 행7장에는 ‘아비를 떠나’가 없다. 아비 데라가 같이 가기 때문)

그러면, 우리는 유추하기를, 갈대아 우르에서 처음 이들을 불렀을 때에 데라는 우상을 섬겼으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잘 믿어서 불렀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여호수아 24장 2절을 보면, ‘조상들’이 우상을 섬겼다고 되어 있다. 즉, 데라의 일가족 모두(아브라함을 포함)가 우상을 섬겼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믿음의 시작은 사람에게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고, 특별히 다른 신을 섬기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나타나서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낸 사건이 ‘아브라함의 이야기’이다. 구원의 조건은 나에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쪽에서 시작되어 땅에 부어지는 은혜, 그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아브라함의 처음 시작이 ‘믿음’이 아니었다는 가장 큰 증거는, 막 불렀을 12장에는 ‘믿음’의 사람으로 볼만한 행동이 하나도 없었다. (거짓말하고, 약속의 땅을 벗어나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하나님이 위대한 신이라는 증거들을 계속적으로 보여 준 후 15장에 가서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이를 의로 여기셨다’(창15:5~7)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 히브리서 11장 8절에 등장하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였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여기서 ‘믿음으로’가 영어로 ‘with faith’가 아니라 ‘by faith’이다. 즉, ‘믿음에 의해서, 믿음이 수단되어’ 이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한 믿음의 첫 번째 영역인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이다.

그러니까 인간편에서 주장되어지는 행위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에 의한 믿음으로 인하여 그가 떠나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하나님 편에서 나온 의지의 표현이다.

이것은 여기 계신 모든 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어지는 얘기이다. 어느 누구도 내 의지에 의해서, 내가 결정하여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부름과 그의 열심과 노력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렀다. 그러나 그가 참 믿음의 사람이 되는데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와중에 아내를 또 팔게 된 일이 있었고, 하갈과 이스마엘의 갈등도 견디어야 했으며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등 정말 쓰러지고, 실패하고, 마음 상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간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사람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수준의 신앙까지 변화되어 간다.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출발은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의지로 완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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