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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3.2022. 아브라함의 이야기(13) 이삭 사건에 대한 오해. 창22:1~14절

본장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친 사건은 신자 모두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내용이다. 물론 이 사건에도 하나님의 큰 은혜가 보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길을 미리 예비하신다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좋아지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가장 사랑하는 것을 바치라고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린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내용이 이러한 것일지 생각해 본다.

● 사건의 내용 정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신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1절) 그 후 아브라함이 이 일을 행하려고 이삭을 번제단에 묶어 놓고 칼로 치려하자 하나님이 말리셨다. 그리고는 이미 준비한 숫양을 보여 주시며 이삭을 대신하여 제물로 삼으라고 하셨다.(13절)

여기서 우리는 석연찮은 부분을 발견한다. 그것은 시험에 관한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했다. 그 시험에 통과하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시험에 통과할 것을 이전에 알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몰랐다는 것인가.

이 답은 양자 어떤 것으로 해도 문제가 있다. 이미 알았다고 하면 굳이 왜 시험을 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고, 몰랐다고 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말에 반하는 것이 된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것은 ‘시험’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면 해결이 된다. 성경에 등장하는 시험은 일반적으로 3가지의 의미가 있다. 유혹, 시련, 테스트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시험한 경우는 여기서 ‘테스트’에 해당한다. 테스트를 왜 하는가. 테스트 대상자의 현재 실력과 수준이 어디쯤인지 확인할 때에 필요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테스트(시험)하셨다. 이 시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이 현재 어디에 와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이 시험은 아브라함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함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상태를 몰라서 확인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처음 갈대아 우르에서 부를 때부터 이 날의 일을 알고 계셨다. 이 시험은 전적으로 아브라함을 위해서이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시험을 보는 것은 선생님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롯이 학생을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이 시험은 시험을 하신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다. 아브라함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현재 믿음의 수준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본인의 믿음이 어떠한지 모른다. 그는 스스로 잘 믿는다고 생각했다가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배신하고 도망 다녔던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인생을 살면서 제일 못 믿을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 자신이다. 이 자기의 산을 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본인 스스로가 이 테스트에 통과를 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 자신이 지금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믿음의 경험을 통해서 본인이 지금까지 알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기쁨과 희열이 있는 인생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단에 바치는 자리까지 몰아가지 않았다면 그의 믿음은 늘 머리에만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믿음이 좋은 척하지만 언제든지 아내를 두 번이나 팔아먹을 수도 있는 아주 저질의 인간이라는 오점을 안고 살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잘 통과했다. 그리고 아들을 내리치는 순간에 그를 말리는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은 실시간으로 나와 함께 하심을 경험했다. 이것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현장감 있는 하나님이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믿음의 행동을 보이지 않았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차원이 다른 복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복은 내가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경험케 해 주기 위해서 우리를 그 시험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그 기쁨과 희열이 있는 곳에 초대하기 위한 부름이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에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이다.(약1:2)

● 제단에 바쳐진 이삭의 의미

일반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해석과 적용을 이렇게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이기에 그것을 내어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이 사건은 우리의 믿음의 행위와 결단을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기록된 것이 결단코 아니다. 물론, 부수적인 내용과 실제적인 부분을 설명하기 위한 용도로는 그러한 것이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핵심 메시지는 아니다.

이 사건은 이삭이 번제단에 바쳐진 뒤, 2천년이 지난 후에 일어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모형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이삭은 예수님의 모습을 완전히 빼다 박아 놓은 모형 중의 모형이다.

이삭과 예수님은 둘 다 정상적으로 출산이 불가능한 여인들(사라,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 약속된 자녀는 이삭이었고, 예언된 메시야는 예수님이었다. 둘 다 모두 출생 전에 이삭과 예수라는 각각 이름이 주어졌었다.(창17:19, 마1:21)


이삭은 자신이 제물 될 번제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고, 예수님은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셨다. 이삭은 아버지가 그를 번제단에 묶을 때에 침묵으로 순종했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릴 때에 잠잠한 양같이 입을 열지 않고 순종으로 십자가를 지셨다.(사53:7) 이삭은 어린 양 때문에 살아서 내려왔고, 예수님은 스스로가 어린 양이 되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 산을 내려왔다.

이 모든 얘기가 무엇을 말하는가. 단순하게 이 사건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복을 받자는 것으로 그치면, 성경이 정말 말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과 대속의 죽음이 묻히게 된다. 그것을 뺀 이삭의 이야기는 오히려 반 기독교적인 가르침으로 끝나게 된다.

예수를 오랜 동안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삭을 바치는 수준이 되지 못하는가. 괜찮다. 그렇게 약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그 일을 대신 감당하셨다는 얘기가 본장의 이삭의 이야기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오랜 시간 동안 그와 함께 하여 결국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 이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이야기. 그것이 바로 오늘 이삭의 번제단 사건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이삭의 사건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달려졌는가. 그렇다면 어떤 부분인가.

3. 만일 지금 나에게 내게 가장 소중한 무엇을 바치라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하겠는가.

4. 신앙이 좋아질수록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세상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

5. 내가 당한 시험 중에 가장 힘들었던 시험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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