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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02.07.2021. 사도행전 강해(32) 구브로에서의 사역. 행13:4~12절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혹은 성령의 일하심으로 말미암아 병자가 치유되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는 우리의 실생활 속에는 항상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 본다.

1. 왜 구브로인가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떠나는데 그 첫 목적지를 구브로로 삼았다. 왜 구브로를 택했는가. 그것은 구브로가 바나바의 고향이기 때문이다.(행4:36) 또한 파송 교회인 안디옥 교회를 세운 사람 중에 중에 구브로가 고향인 사람들이 있었다.(행11:20)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사역을 이해하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여행을 진행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거대한 꿈을 꾸고 큰 믿음으로 가자’라고 떠난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대화도 잘 통하고 환경도 익숙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무슨 말인가. 성령은 가장 상식적인 것에서 시작함을 의미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이 있다. 이 선교팀이 처음 도착한 곳은 구브로의 살라미이다. 그곳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복음을 전한 곳은 헬라의 신당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이방 땅에 갔으나 처음부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었다. 유대인에게 갔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예수를 막 믿은 다음에, 혹은 없었던 충만한 은혜를 경험했을 때에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변하는 것이 있다. 먼저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삶의 현장과 상황과 조건이다. 이것은 믿기 전이나 후나 큰 차이가 없다.

그럼 무엇이 변하는가. 내가 갖고 있는 목표와 가치가 변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달라진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즉, 우리의 행복과 만족이 내 눈에 드러나는 가시적인 것의 변화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내가 바라봐야 할 대상과 갈 길이 어디인지를 아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누림과 즐거움이 생긴다. 이것이 성령의 큰 사역이다.

성령을 통해서 얻게 되는 변화는 갑자기 능력의 종이 되어, 악과 병과 해로운 것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신자의 실제적인 변화는 훨씬 더 긴 싸움이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어떻게 보면 끊임없이 고독한 처절한 전투요, 인내와 절제를 통하여 이루는 인고의 길이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기적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에 있지 않다.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은 대단하고, 놀랍고, 남들이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가장 상식적이고 평범하고 누구나 다 하는 것을 당연한 듯이 즐거움으로 해 나가는 것이 신앙이다. 이것을 충실히 지킬 때에 우리의 인생관도 변하게 될 것이다.

2.총독 서기오 바울

이 선교팀은 살라미를 떠나서 서쪽의 ‘바보’로 이동을 한다. 여기서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을 만나고 그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된다. 그는 로마의 귀족으로 학문과 지식을 겸비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항상 마술사 바예수(엘루마)와 함께 한다. 이 총독은 이 마술사를 보호하며 그의 말을 의지한다. 그는 이 마술사를 옆에 두고 모든 것을 의논하며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함께 하려하다. 그런데 이 모습은 우리 신앙인의 모습에서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이 그렇게 행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에 무서움이 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먼저 구분을 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의 성숙과 성장을 위하여 반드시 믿음의 동료가 필요하다. 그와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공유하며, 말씀의 순종과 적용을 위하여 서로 격려하는 동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내 곁에 ‘신앙의 동료’를 두고 있는지 ‘마술사’를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확실한 잣대가 있다. 그것은 어떤 결정할 일이 생겼을 때에 그의 말을 맹목적으로 의지하는가, 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 고민하는 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대상은 목사나 선교사일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목사는 성도의 인생 속에 들어와 영적 권위라는 이름으로 결정을 강권하는 자가 아니다. 목사의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양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것이다. 성도의 어려움을 목사의 기도나, 영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개개인이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목사의 일이다.

바울의 그 일을 명확하게 행했다. 마술사 엘루마를 맹인이 되게 할 때에 본인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충만함으로 행했다.(9절). 성령 충만이란 물리적인 충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의 존재가 내 안을 가득 채웠음을 인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이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과 능력이 아닌 성령의 힘으로 행한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울이 가진 신비로운 힘이 아니다. 그렇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도 부탁을 할 때에 그 사람의 기도의 힘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를 마술사로 만드는 것이다. 신앙의 성숙은 항상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성장을 한다.

신앙은 평범함 가운데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상반되는 일을 한다. 그것은 강한 선포로 마술사 엘루마를 맹인이 되게 한 것이다. 이는 일반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왜 바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밝히 알리기 위해서이다.(12절)

기적은 복음서로부터 사도행전에 이르기까지 항상 이 일을 위하여 사용되었다. 성경의 기적과 이적은 내 개인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서 동원되지 않았다. 그것을 가장 기본으로 한다.

바울은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통하여 기적을 행한다. 마술사를 맹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칼에 맞아 목이 잘리는 상황 속에서도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다 이 길에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마16:24)이라는 그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도전이 되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란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길~게 싸워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결국에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3. 내가 존경하는 선교사가 있는가. 기억에 남거나 존경을 받을 만한 부분은 무엇인가

4. 사도들이 순교할 때에 왜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이 만일 그 위치에 있다면?

5. 내가 가장 성령 충만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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