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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4.2021. 사도행전 강해(30) 불편한 진실의 이해. 행12:18~25절

유대의 분봉왕 헤롯은 사도 야고보를 처형한 후에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다. 이것은 무교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처형을 하루 앞두고 베드로가 탈옥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에 격분한 헤롯은 베드로를 지켰던 파수꾼을 죽이라 명령한다.

여기서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대하게 된다. 그것은 베드로를 살리기 위하여 아무런 잘못이 없는 파수꾼들이 죽어야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불편한 이야기들이 가끔 등장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에 헤롯 대왕이 그 때 쯤 태어난 두 살 아래의 어린 아이들을 다 죽인 사건이다. 누가 예수인지 몰랐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은 하나님이 정의로우시고, 공평하시다는 정의에 크게 대립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이 부분을 우리가 정리하지 않으면, 순간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신앙의 갈등과 고민을 불경이라는 이름으로 묻어두고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무언가를 판단할 때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내가 갖고 있는 분명한 한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을 중심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상식일 경우에는 그 기준이 옳다는 것에 대하여 추호의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세상의 윤리와 도덕도 나라와 문화와 심지어 각 가정 마다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아름다운 것’으로 예배하라고 한다.(시96:9) 하지만 그러한 심미적 기준 마저도 내가 살아 온 환경과 문화에 따라 다 다르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제시하는 ‘의’와 우리가 생각하는 ‘의’는 정말 많이 다르다. 심지어 단어만 같을 뿐이지, 그 내용이나, 그 단어가 갖는 방향성은 완전히 다른 단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창녀인 듯이 속여서 성관계를 가져서 임신을 한다. 유다 역시 창녀인 줄 알고 화대까지 주었다.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큰 죄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유다는 다말을 지혜롭다 칭찬한다. 그리고 이 때에 다말이 임신하여 낳은 아들 베레스는 다윗의 조상이 되고, 이 다윗에게서 그리스도 예수가 탄생을 한다. 다윗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달아나면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배고픔에 못 이겨 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징벌하지 않는다.

반면에 사울은 제사장이 드려야 할 제사를 대신 드렸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런 내용이 나오면 다윗이 하나님께 꾸지람을 들은 일이 없다는 결론을 알기에 자꾸 이 상황을 부하들을 챙겼던 다윗의 폭 넓은 리더십으로 조명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자꾸 그런 식으로 내용을 몰고 가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은 사라지고 왜곡된 내용만 묵상하여 내용 없는 종교인으로 남게 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무엇인가. 그 ‘의’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로마서 3장 22절에 아주 자세히 나와 있다.

“곧 예수 그리스도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의’이다. 성경에서 얘기하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석되는 믿음이다. 반대로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이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달려가는 모든 것이 죄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이다. 이 기준은 창세 이래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되는 의. 그 외에 다른 것은 없다.

말이 안 되는가. 그렇다. 말이 안 된다. 우리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것이 성경의 의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의 언약으로만이 해석이 가능하다. 기독교의 시작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고, 그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우리의 상식과 논리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기초한다.


더욱이 우리의 구원은 다른 그 어떤 선행과 공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죽음을 믿는 자만이 구원에 이른다. 이러한 복음은 절대로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해석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수를 믿지만 이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과 함께 자신의 의를 쌓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 착한 행위로 복을 얻으려고 하고, 예수 보다 그것 자체에 공을 들이기에 결국에는 복음이 없는 종교 생활로 삶을 마치게 된다.(롬10:2~4)

내 노력과 수고를 의지하는 것이 왜 헛된 것인가.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의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완벽한 하나님의 의를 만족케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만이 가능하다. 그가 곧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의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좇아가라는 것이며 이것이 결국에는 율법의 모든 의를 이루게 된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요. 복음이다.

내 앞에 벌어지고 해석이 되지 않는 모든 일들은 우리가 가진 의에 대한 개념의 한계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그 세계의 문화를 아직 현재 내가 체험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 땅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차원의 세상에서는 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기에 내가 머리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고, 공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세계와 그의 나라 안에 온전히 거하게 되는 날, 모든 것을 보게 되고, 알게 되고, 해결하게 될 것이다.(고전13:12) 그 때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불편한 진실이 내게 더욱 깊이 있는 은혜로 장착이 될 것이고, 이전 보다 더욱 깊은 신앙의 풍요로움으로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성경 속에서 내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3.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가. 내가 본 기억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을 설명해 보라

4. 책에서 본 미국과 내가 경험한 미국의 차이는 어떤 것이 있는가. 혹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미국이 실제와 다른 것은 무엇인가?

5. 예수를 바로 믿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의는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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