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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14)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의 복.마5:10~12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핍박을 당하는 종교는 기독교이다. 냉전 시대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현재는 여러 지역에서 무슬림과 힌두교인 등에게 박해를 당한다.

왜 사람들은 유독 기독교를 싫어할까. 물론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윤리적 문제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요즘 미디어를 통해서 폭로되는 교회와 유명 목사들의 위선적인 모습도 한 이유이다. 그러나 사실 비리나 위선은 다른 종교 안에서도 일어난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이런 문제가 있기에 이것을 기독교만의 문제라고 말하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다.

그럼, 왜 유독 기독교를 박해하는가. 그것은 기독교가 유일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세상의 그 어떤 종교에서도 답을 줄 수 없는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악한 영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뿌리를 뽑아 없애려고 한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참 진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반대되는 영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탄’이다. 그런데 사탄 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사탄을 섬기는 종교이든지 간에 그들이 갖고 있는 상징(symbol)에 꼭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십자가를 공격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태우든지, 십자가를 거꾸로 뒤집든지, 십자가의 자리에 자기가 들어가든지, 늘 공격 대상은 단 하나, 십자가이다. 왜 그럴까. 다른 모든 종교는 다 한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이다. 다른 것은 가짜이지만, 예수님은 진짜이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의’에 관한 문제이다. 세상의 의는 모두가 다 인간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에 이른다.(윤리, 도덕, 인본주의, 범신론 등) 그러나 기독교의 의는 ‘하나님으로부터’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룰 수 있다.

기독교는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선한 것을 조합하거나 키워서 구원이라는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그것이 없으므로 밖에서부터 주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과 공로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된 것이며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의를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는 신자의 삶은 내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얘기한다.(눅 6:26) 왜 그런가. 슈바이처, 테레사, 간디를 보라. 우리는 그들의 삶을 존경하고 칭찬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저들은 ‘선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우리에게 화가 된다.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의 의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본문 10절의 ‘박해를 받은’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디오코’이다. 이 말은 ‘몰아가다, 내몰다’라는 뜻으로 목자가 목적을 두고 양 떼를 한 곳으로 몰아갈 때 쓰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예수님이 곧 ‘의’이기 때문에 ‘복이 있도다. 예수님이 한 곳으로 몰아가고 있는 너희여’라는 번역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 말은 곧, “너희의 남은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왜 그것이 복인가. 이제 신자의 남은 생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후에 벌어지게 되는 복이요. 은혜이다.

팔복의 내용을 보면 마치 우리는 손해 보고 약한 자로 살아야 하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약한 자’가 아니다. ‘아는 자’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이고, 하나님의 의를 아는 자이다.


생명은 반드시 사망을 이긴다. 신자 된 우리의 본분과 존재 이유와 원리를 잘 이해하고 아는 자가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팔복이다.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아래를 클릭하시면 국민일보 원본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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