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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팔복 Ⅶ: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5:8절. 12.08.2019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했다. 성경적 의미의 청결은 무엇인가? 또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1. 마음의 청결의 의미

1) 정결

본문에 등장하는 ‘청결’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카다로스’라는 단어인데, 신약 성경에 많이 쓰인 ‘정결’이라는 단어인 ‘카다리조’와 어원이 같다. 이 말은 율법적 의미로 ‘깨끗하다고 선언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청결은 ‘깨끗하다고 누군가로부터 선언된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율법에 의하면 인간이 깨끗함을 입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피흘림이 있어야 한다(히9:22). 대신 죽어야 한다. 그렇기에 구약에서는 나대신, 소나 염소를 잡아서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반복적으로 드려야했던 제사가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단 한 번의 제사로 자기의 피를 바쳐서 우리를 깨끗하게 했다(히9:12). 이것이 십자가요.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이다.

이 팔복에서 말하는 ‘청결’을 예수님의 보혈의 피와 아무 상관없이 해석하면 안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살면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가 되기에 굳이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정결함은 타종교에서 말하는 수양이나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만이 나를 정결하게 한다. 우리의 깨끗함은 내 행위가 아닌 예수의 대속의 죽음으로 만으로 가능하다.

2) 순수 & 단심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 ‘청결’을 pure 라고 번역을 했다. 그러니까 ‘순수함, 순전함, 섞인 것이 없는’이라는 뜻이다. 한국말로는 ‘단심’ 혹은 ‘한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팔복의 ‘청결’의 의미가 ‘한 마음’이라면, 반대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마음’이다. ‘양다리’이다.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포기 못하고 저것도 포기 못하는 마음이 바로 ‘두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향하여 그들의 제단을 부수며 벌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셨다(호10:2).

갈라디아 교회는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에 세운 교회이다. 그런데 3차 전도여행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갈라디아 교회에서 이상한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다른 복음’이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이 있는데, 그것 갖고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할례와 절기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자들의 말에 갈라디아 교인들은 현혹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훨씬 더 상식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사도 바울은 분노했다. 그래서 경고의 의미로 쓴 서신서가 ‘갈라디아서’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두고 뭐라고 말을 했는가? ‘내가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라고 했다. 예수의 보혈 이외에 다른 것을 더해야(add) 구원이 있다고 믿으면, 그것은 ‘한 마음’이 아닌 ‘두 마음’을 품은 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적용을 한다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외에, 예수를 믿은 후로 ‘성경대로’ 믿지 않고, 예전에 타종교에서 하던 신앙의 행위를 그대로 가져와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다른 종교의 지침과 기독교 신앙을 섞어서 ‘좋은 것이 좋은 거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바울 전한 복의 이외에 ‘다른 복음’을 좇는 사람들이다. 다른 종교의 것도 일리가 있기에 이것도 지키고, 저것도 지키는 마음이 ‘두 마음’을 품은 자이다.

2. 하나님을 본다는 것의 의미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하셨는데, 사실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것은 결코 복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보는 것을 왜 예수님은 복이라고 말을 하셨을까? 이 ‘본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이 때 쓰인 ‘본다’라는 말은 ‘호라오’이다. 이 단어는 ‘본다’라는 뜻도 있지만, ‘알다’라는 뜻이 있다. 영어에도 ‘알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Know’와 ‘See’가 있지만, 두 단어의 쓰이는 용도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Know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할 때’ 쓰이고, See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 사용된다.

이 헬라어에 Know에 해당하는 말이 ‘기노스코’이고, See에 해당하는 단어가 오늘 본문의 ‘호라오’이다.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이전까지 너희가 알던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전에는 하나님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지만, 이제는 사랑의 하나님, 함께 하는 하나님, 나를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는 희생의 하나님으로 함께 하게 된다는 축복의 선언이 새로이 선포되는 복인 것이다.

이 팔복은 복의 조건이 아니다. 예수님이 신자들을 향한 복의 선언이다. 이미 예수를 믿은 제자들에게 한 선언이다. 그렇기에 본문을 직역하면 이렇다. ‘복이 있도다. 마음이 청결한 자요.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 무슨 말인가?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한 것은 그들이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그 앞에 나와 있는 자체 만으로 우리에게 쏟아 부어주시는 정결함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빌립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한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본자는 이미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요14:8,9)

그렇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입은 자들이다. 그 피를 통해 정결케 되었음을 마음으로 믿는 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가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것이 우리에게 선포된 팔복의 은혜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 찔렸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본인이 참으로 순수하다고 생각되었던 때가 있었는가? 언제였고, 왜 그렇게 느끼는가?

3. 나는 조금도 의심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만을 의지하여 깨끗함을 입었다고 믿는 자인가?

4. 내가 ‘한 마음’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는 요인이 있다면 무엇 때문인가? (과거의 종교, 나의 강박?)

5. 크리스찬은 율법은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무시하고 살아도 되는가? (정직, 순결, 주일 성수, 십일조...)

6. 내가 ‘두 마음’을 품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과거의 종교 혹은 습관과 혼합된 신앙 생활)

7. 예수를 ‘한 마음’으로 믿게 된 후에 새로이 느끼게 된(알게 된) 하나님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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