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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Ⅶ: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6:9~13절. 02.16.2020

주기도문의 7번째 시간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에 대하여 알아보자.

1. ‘우리’의 기도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이후로 기도의 중심이 ‘하나님’에서 ‘우리’로 바뀐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주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나 개인만 생각하는 기도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한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을 내가 쉽게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같은 아픔을 느낀다면, 누군가 이 작은 단어 ‘우리’라는 이 말 한마디에 사람이 살고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나를 위한 기도 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기도, 이웃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고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기도하라’는 명령 뒤에 숨겨진 타인을 향한 관심과 사랑의 당부이다.

2. 용서의 기도에 대한 분석

십자가의 은혜란 다른 것이 아니다. ‘용서’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독교의 핵심인 용서를 가르치셨는데 우리 한국말 번역이 원문과 다른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 눈에 드러나게 잘못 번역되어 있는 부분이 ‘문장의 순서’이다. 한국말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으나 헬라어 원본에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가 먼저 나온다.

강조하는 말을 문장의 앞에 두는 헬라어의 특징으로 보면, 이 기도는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고백이 핵심인 것이다. 먼저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어떤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고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기도를 할 때에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이 기도의 문맥을 보면 내 죄를 하나님께 사함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누군가의 죄를 용서해야 가능하다는 ‘조건’이 따라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의 핵심인 ‘우리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라는 것과 완전히 대치가 된다. 그렇다면 이 기도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이것에 대한 해석은 영어 성경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어 성경에 보면,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라고 like로 써도 되는 부분을 굳이 as 라고 번역을 했다.

like와 as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like는 ‘~처럼’이란 뜻인 반면에 as는 ‘자격, 권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사하여 준 것처럼(like),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이 아니다. as가 쓰여진 것은, 먼저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을 전제한다.

즉, 십자가의 구속함을 통하여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자녀로써(as) 우리는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구원 받은 자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이기에 그 힘으로 용서를 했다는 뜻이다.

특별히 이 문장에는 ‘have forgiven’이라는 현재 완료형 동사가 사용이 되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구원 받는 순간, 우리가 받은 그 힘으로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자격이 있는 자로 서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에 누군가를 향한 용서가 가능한 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구원 받은 자녀라는 그 자격이 주어짐이 먼저라는 사실을 놓치게 되면,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으면 구원을 못 받은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으신 것이 우선이고, 그것과 동시에 혹은, 그 후에 일어나는 것이 ‘용서’이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 요소이다.

3.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는가(방법)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입어 구원을 입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향한 용서도 무조건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과 용서는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지만, 용서는 무조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의 대가로 ‘죽음’을 요구하신다(롬6:23).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가 생긴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 죄를 사함 받았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믿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로 죄 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용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럼 어떻게 용서를 받았는가? 그 대가를 예수님이 치른 것이다. 우리의 죄사함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 준 그 대가로 우리가 용서함을 받은 것이다.

그 십자가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채찍에 맞아 피부가 패이고, 뼈가 상하고, 창에 찔려 엄청난 피를 쏟고 십자가 못에 몸이 실리는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로 죄없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받게 된 것이 우리의 용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기도 이전에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어야 한다.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도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히 하나님 앞에서 내가 그럴 수 있는 힘이 없다고 고백하라. 그냥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용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용서를 할 수 있으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치신 이유는 용서를 못하면 내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용서를 하지 못하면 아이러니하게 가해자는 멀쩡히 잘 사는데 우리는 거기에 눌려 있다. 얽매여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용서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라’라고 하신 이유는 아마도 그게 다 일 것이다. 그 일로 더 이상 우리가 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의 표현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그 청원의 기도이다.

나눔 질문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예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든 적이 있는가? 본인이 느끼는 ‘미안함’과 ‘용서의 간구’의 차이는?

내 삶에 아픔을 공감하며 함께 기도하고 있는 믿음의 가족이 있는가? 어떻게 만났고 누구인가?

주기도문의 용서에 대한 부분을 말할 때에 내 마음이 어떠했는가? 말씀을 들은 후에는 어떠한가?

내 삶에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떻게 해야 용서가 가능할 것 같은가?

용서를 하지 못해서 삶이 무너진 경험은?

7. 십자가를 떠올리며 용서를 한 경험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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