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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Ⅳ 나라가 임하시오며. 마6:9~13절. 01.26.2020

주기도문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에 등장하는 ‘나라’는 ‘천국(하나님 나라)’을 의미한다. 이 천국의 의미는 무엇인가? 천국의 현재성과 미래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1. 천국의 개념

천국은 ‘하나님 나라’인데, 여기에 쓰인 ‘나라’의 헬라어는 ‘바씰레이아’라는 말로써 ‘왕국’이란 뜻이다. 즉,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통치 아래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천국에 관한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이 사실이 제대로 인지되어 있지 않은 채 천국을 그리고 있다면, 거의 예외 없이 성경이 말하는 ‘천국’이 아닌 ‘극락’일 확률이 아주 높다.

‘극락’이 무엇인가? 대승 불교 사상에서 나온 정토(pure land)로서 부처나 보살이 거주하고 있는 청정한 세계로 마음이 깨끗해야 갈수 있으며 자연적 환경이 좋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번뇌와 괴로움이 없는 곳이다. 만일 여러분이 천국을 이와 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천국이 아니다. 천국과 극락의 가장 큰 차이는 극락은 환경적으로 좋은 것이 강조된 곳이고, 성경의 천국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있다. 그 분의 통치가 있는 곳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하늘, 땅 혹은 마음에 있는가? 또한 천국은 언제 임하는가? 아니면 천국은 이미 임했는가? 천국이 이미 임했다면 지금 ‘나라가 임하옵시며’는 미래적 표현인데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만 하는가? 천국의 신학적 명제는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이다. 천국은 부분적으로 이 땅에 임했다. 하지만, 완성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뜻이다.

2. 천국의 현재성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가?’를 물었다(눅17:20).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21절)’고 대답하셨다. 여기서 ‘너희 안에’를 우리의 내면 혹은 마음으로 해석을 한다면 두 가지 부분에서 굉장히 위험하다.

1) 불교 사상 :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이 세상은 천국이 될 수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완벽한 불교 사상이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천국과 다르다. 우리가 세상을 볼 때에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에 평정을 얻으려 노력하여 평안을 얻으면 그게 천국이다’라는 것은 기독교 사상이 아니다.

2) 대상의 문제 : 지금 본문 속에서 예수님이 말한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라는 것을 ‘우리의 마음’으로 해석하면 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이 가리키신 ‘너희’는 예수를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를 거부하는 자들인데, ‘그들의 마음속에 천국이 있다’라고 말하면 예수를 믿지 않아도 내 의지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 안에’는 무슨 뜻인가? 헬라어에는 ‘안에’라는 뜻의 단어가 몇 개 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엔(έν)’라는 단어로 우리 말 ‘안에(in, within)’라는 뜻이다. 반면에 ‘엔토스(ἐντὸς)’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뜻은 ‘안에(in, within)’라는 뜻과 ‘가운데(among, midst)’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너희 안에’라고 말씀하실 때 쓰인 단어는 바로 ‘엔토스(ἐντὸς)’이다. 즉, ‘너희 가운데에, 너희 관계 속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천국은 너희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땅에 이미(!) 임한 천국이다. 이 땅에 임한 천국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천국은 국토적, 영토적 개념으로 와 있는 것이 아니라 통치권적 개념으로 와 있기 때문이다.

그 천국을 왜 우리는 보지 못하는가? 예수님은 천국을 ‘겨자씨의 비유’로 설명하셨다. 아주 작은 겨자씨가 땅에 심기어지는데 나중에는 공중의 새가 깃들 만큼 큰 나무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천국의 비밀(mystery)’이라 하셨다. 즉, 그 크고 놀라운 천국이 우리에게 상사 할 수도 없이 작게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못 알아보고 가치 없게 생각한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움이다. 천국이 자신이 갖고 있는 놀라운 영광과 권세와 힘을 뒤로 한 채 아주 작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와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영광과 권세를 뒤로 한 채 우리를 설득하기 위해 가장 작고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다. 여기에 우리가 놀라야 한다. 그 천국을 예전에 예수를 비웃고 십자가에 못 박았듯이 지금 이 시대가 귀한 천국을, 예수를 비웃고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임한 천국의 비밀(mystery), 그 신비이다.

3. 천국의 미래성

앞으로 오게 될 ‘완성된 천국’은 사나운 짐승이 어린아이에게 순종하고, 독사의 굴에 넣어도 아무런 해가 없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곳이라고 한다(사11:6~9). 이것은 천국이 문자 그대로 이러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은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참된 기쁨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잘 알 수 있는 세상적은 재료(material)로 표현한 것이다.

그 천국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에 오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는, 그 재림의 날에 완성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게 될 것이다. 그 날을 기대하는 기도가 바로 지금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나라가 임하옵시며’이다. 여기에 우리 신앙인의 어려움이 있다. 지금 괴롭고 힘든 일들이 지금 해결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약속된 완성된 천국이 미래적이기 때문에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 날에 우리가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요. 치유가 된다는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의 아픔과 어려움을 인내로 견디어 하늘의 상급으로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생각했던 천국과 설교를 들은 후의 천국에 가장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나누어 보라

3. 내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었는가? 언제, 무슨 일이었는가?

4. 불신자에게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간다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5. 앞으로 가게 될, 혹은 임하게 될 천국에 대한 기대가 있는가? 있거나, 없다면 이유를 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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