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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자 하나님(황성철 목사)

아래는 황성철 목사님께서 해 주신 요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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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자 하나님

본문: 사도행전 16:6-10

주제: 인도자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한 길을 닫으시면 다른 길을 열어 주신다.

 

I. 서론

Historic and Historical 의 구분

둘 다 “역사적인”으로 번역되나, historical은 “역사상의 역사학의 역사와 관련된” 이란 의미의 역사적이고, historic 은“역사적으로 중요한, 역사에 남을 만한”의 역사적인 이란 의미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시인의 “가지 않은 길”에서 인생의 역사적인(Historic) 선택을 보게 된다. 두 갈래 길이 숲속에 나 있었고,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노래하고 있다.

 

인간은 선택하며 살고 있다. 아침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인들도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 결정을 하며 그 결정을 이루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프로스트 시인의 시에서 처럼 선택한 그 길로 인해 운명이 바뀌어 졌다는 것처럼, 우리의 선택 속에서도 때로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때, 주님의 인도가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인도하시기 원하시며 지금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 성경 본문은 바울의 제2차 선교 여행을 배경으로 한다.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는 성령님, 그래서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는 바울. 그러나 주의 영 곧 성령님이 이들을 막고,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통해 바울을 마게도냐 지방의 전도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동양의 종교였던 기독교가 서구 유럽으로 전파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길을 인도하신다. 그러면 이런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은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II. 본론

1.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의 결정자는 하나님이시다. 바울의 선교의 길을 막기도 하시고 열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신앙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가? 그렇게 고백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살아서 하시는 사역 중에 하나는 인생을 인도하시는 일이다. 결정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그렇다면 지금도 간섭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믿음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 되심을 늘 인정해야 한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기도하며 부르며 찬양하는데, 이런 고백 속에 진정으로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며 그래서 인생의 길도 인도하시는 주인으로 인정하고 받아 들였는가 돌아보아야 한다. 로마서 8:14에 따르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그들은 곧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는 자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자들임을 주기도문을 통해 알수 있다.“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본을 보이셨다. 십자가를 지기 전에 기도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셨다. 우리의 뜻을 이루기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기를 바라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백성인 것이다. 기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바라는 자세가 중요하다

(예화)

한 수도사가 감람나무 묘목을 심고 "주여, 비를 내려 주옵소서"라고 기도를 했다. 그러자 즉시 이슬비가 내렸다. 수도사는 계속 햇빛과 서리와 바람을 요구했고, 그것은 곧 실현됐다.

그런데 묘목은 자라지 않고 자꾸 시들어가자 수도사는 감람나무를 잘 키운다는 수도사를 찾아 상담했다. 그때 이 수도사는 이렇게 충고했다.

"나무가 언제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네. 나는 이렇게 기도하지. 주여,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맞은 때 알맞게 주십시오."

 

우리가 길을 결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빌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적절한 때에 알맞은 방법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길의 결정자는 하나님이시다.

 

2. 우리가 애써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은 더욱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뜻대로만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 더욱이 바울 같이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애써도(7) 허락지 아니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뜻이 선하고 온전한 것인가에 달렸다.

            인격적인 신앙은 인격적인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려는 신앙.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필요한 이유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하려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가? 항상 물어 볼 수 있는 신앙... 코람 데오(Coram Deo)의 신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육신의 안목과 정욕을 따라 살게 되어 있다. 죄성이라는 구습이 살아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엡 4:17절 이하)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 교인들에게 주는 바울의 교훈이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애쓰는 것이 막혔다고 해서 하나님께 불평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안목과 생각에서 나온 것일 수 있기에 그렇다. 인내가 필요하다. 사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생각하면 인내할 수 있다. 은혜는 인내를 견디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다른 은혜를 주신다.

 

3. 하나님은 다른 길을 열어 주신다. 한쪽 길을 막으시면 다른 길을 우리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이시다. 환상으로 마게도냐 선교를 여시며, 유럽 전도의 길을 여셨다. 막힌다고 생각이 들 때는 다를 쪽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길이 막힌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예화)

그리스에 집안이 너무나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해 겨우 자기 이름만 쓸 줄 아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은행에서 수위 모집이 있음을 알고 응시를 했지만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그는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낙심천만한 그는 교회에 가서 엎드려 "하나님. 나는 어쩌다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공부를 못하여 수위 시험에도 떨어져야 합니까." 하고 통곡하면서 기도를 했다. 그러자 "내 계획은 다르다. 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는 곧 짐을 싸서 그리스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뉴욕에 도착한 그는 자기 후손들에게는 자신처럼 글도 배우지 못하는 슬픔을 안겨주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을 하였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많은 돈을 모은 그는 사업을 시작하였고.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그가 중년이 넘었을 때는 금융가인 월가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 되었다.

그의 60회생일 파티에는 저명한 재계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그 생일 파티에 참석하였던 한 기자가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자서전을 내십시오. 선생님이야말로 자서전을 낼 만한 분이십니다". 그러자 그가 싱긋 웃으면서 "나는 내 이름밖에 쓸 줄을 모른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기자가 애석하다는 듯 만일 선생님께서 글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훌륭한 일을 하셨을까요. 하자.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글을 알았더라면 나는 기껏 그리스에 있는 한 은행의 수위장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글을 몰라서 수위 채용시험에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III. 결론

            모든 것을 아시고 결정하시는 하나님이 때로 우리의 길을 막기도 하시는데, 다른 길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인정하고 바로 따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자신의 생각이나 결정을 하나님을 통해 이루어가는데 있지 않다. 되려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늘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바울 같이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애써도 허락지 아니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다. 선택에 의한 결과의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이나 결정대로 되지 않았다고 낙심하거나 염려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선택의 길을 막으신 하나님은 또 다른 길을 예비하시고 보이시기 때문이다. 한쪽 길을 막으시면 다른 길을 우리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이시다. 환상으로 마게도냐 선교를 여시며, 유럽 전도의 길을 여셨다. 막힌다고 생각이 들 때는 다른 쪽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길이 막힌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모든 것을 아시고 결정하시는 하나님이 때로 우리의 길을 막기도 하시는데, 다른 길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인정하고 바로 따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지혜와 선한 뜻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우리의 반응

순종과 동행함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독백이 아닌 대화로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일어 날까 말까 교회 갈까 말까”혼자 생각하지 말고, “주님 일어 날까요? 주님 교회에 갈까요?”라고 주님과 대화하며 살아가야 한다.

유명한 영국 침례교 목사, 챨스 스펄젼 목사, “설교 단에 오르면서, 성령님 먼저 올라 가시지요. 제가 따르겠습니다.”이렇게 대화했다고 한다.

함께 계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묻고 듣고 순종하며 동행하자.

 

 

Roberst Frost,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기도할 때에 '내 뜻과 내 계획'을 계속 간구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3. 내 길의 결정자가 하나님이시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4. 아무리 간구해도 길이 열리지 않은 각자의 경우를 말해보라. 이것으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5. 하나님이 다른 길을 열어 주신 경우가 있다면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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